매년 비 시즌 겨울이면 눈높이가 다른 다양한 패턴의 야구기록강습회가 잇달아 열린다.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록강습회를 비롯, 사회인야구로 불리는 생활체육 기록업무 종사자들을 위한 전문기록원 과정, 수도권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지역 야구연합회를 위한 출장기록강습 등, 해마다 여러 계층을 파고드는 기록강습회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울러 그 대상을 정함에 있어 학력은 물론 남녀노소의 구분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참가기회를 얻는 것에서 조차 경쟁률이 치열할 만큼 성황리에 개최되는 대부분의 강습회장이 성인들만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현실은 늘 마음 한 구석을 허전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왜냐하면 바로 어린이들이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초등학교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오는 일이 있긴 했지만 이는 아주 드문 일이었고, 강습과정 자체가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엔 다소 난해한 부분이 많았던 터라 아무래도 어린이들은 늘 배움터의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국연식야구연맹(회장 김양경)의 유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기록실습 교육마당 개설제의는 길을 찾고 있던 기록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고, 시작이 반이라고 이런저런 복잡한 의례를 따질 것도 없이 기록위원회는 지난 1월 19일 과감히(?) 잠실 주경기장 내 연식야구장에 모인 어린이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프로그램의 정식명칭은 ‘희망서울 어린이 홈런왕 야구교실’. 형식은 매년 동절기 주말과 일요일을 활용해 서울시 체육시설 관리사업소(소장 송두석)와 한국연식야구연맹이 손을 잡고 유소년 야구부원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연식야구교실에 재능기부의 의미를 담아 기록실습 교육시간을 더하는 형태의 기록강습이었다.
반응은 어떨까? 어떻게 하면 딱딱하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끌어갈 수 있을까? 기록원들은 나누어 줄 유인물 등 필요한 준비를 하면서도 나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어린이들과의 만남 자체는 고민 아닌 작은 설렘이었다.
그리고 2주차가 흘렀다. 칼 바람 부는 영하의 차디찬 날씨임에도 글러브를 끌어안고 아빠, 엄마를 따라 실내 야구연습장으로 하나 둘 모여드는 어린이들. 당장 야구선수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놀이개념으로 배우고 익히고자 찾아온 어린이들이지만 그들의 눈빛과 몸짓에 묻어있는 야구에 대한 진지함과 호기심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기록부호 하나를 알려주면 둘 셋을 미루어 답할 줄 아는 어린 꿈나무들. 비록 하루 30분 가량의 짧은 수업이지만 야구기록을 통해 날아보는 상상 속 날개 짓에 어린이들의 얼굴에는 천진난만한 미소가, 좁은 공간에는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가 연신 끊이지 않고 넘쳐 흘렀다.
“투수가 던진 공이 바운드 되어 타자에게 맞으면 뭘까요? 볼일까요 아니면 몸에 맞는 볼일까요?”
삼촌뻘 되는 기록원 아저씨의 질문에 너도나도 손을 들고 아우성이다. 수업이 끝난 12시 30분 반과 수업을 앞둔 3시 시작반이 함께 모이는 자리라 어린이들만 따져도 30명이 훌쩍 넘는 과밀(?)수업. 그런데 그냥 볼이 아니라 ‘몸에 맞는 볼!’이라는 정답을 맞춘 어린이가 가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어린이 혼자라는 사실에 일제히 “와”하는 탄성이 터진다.
“홈런이 될 것 같은 공이 새에 맞고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에는 답을 내기 이전에 오히려 반문이 화살처럼 날아든다.
“새가 공을 물어가면요?”
“그 새는 죽었어요?”
“와! 아프겠다!”
“투구가 타자 앞에서 새에 맞으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다음 질문에도 또 한번 호기심들이 발동을 건다.
“그런 일이 진짜 있었나요?”
“누구였어요?”
“새는 어떻게 됐어요?”
“그런데 타자가 휘두른 방망이에 새가 맞으면요?”
“불쌍해요!”
어떤 어린이들은 수업 시작 전에 가만히 다가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묻는다. 그것도 답하기 쉽지 않은 정치적(?)색채 아주 짙은 질문들을.
“박현준 선수는 이제 야구 못해요? 왜죠?”
“손민한 선수 어떻게 되나요?”
이것 저것 궁금한 것은 어린이들뿐만이 아니다. 가만히 수업을 지켜보던 학부모들도 중간에 끼어들어 하나씩 질문을 거든다. 훼방이 아니라 바라던 바였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나이차에 상관없이 부모님과 야구에 관해 시시콜콜 묻고 답하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 야구란 것이 원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보물상자이지 않던가.
수업이 끝난 후 귀가하는 어린이들의 작은 손에 꼭 쥐어진 기록 가이드북과 기록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값지고 귀해 보였다. 혹시 모를 일이다. 훗날 오늘의 이 시간이 계기가 되어 기록원 키드가 탄생하는 그날이 올는지도….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