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은 '꼴뚜기'는 잊어라.
김시진(55)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야구계에서 사람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야구인 선후배들은 물론 구단관계자, 기자들 등 야구관계자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남자’로 통한다. 항상 예의를 갖추고 자상하게 이야기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불합리한 것에 무조건 참고 지내는 스타일은 아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NO’를 외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선수시절부터 ‘한고집’으로도 유명했다. 그렇기에 한 시즌 25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는 등 최고 스타 투수로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면에는 ‘지기 싫어하는’ 독기를 뿜고 있는 남자이다.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사령탑이 김시진 감독인 것이다.

롯데 감독을 맡아 처음으로 소화하고 있는 사이판 전지훈련지에서부터 김시진 감독이 ‘승부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사이판에서 롯데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6년째 사이판 전지훈련 중에서 올해가 가장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선수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2008년 사이판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2010년까지는 한국야구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메이저리그식 훈련’으로 오전 8시에 시작해 정오면 팀훈련이 끝났다. 이후에는 개인자율훈련. 그리고 로이스터 감독에 이어 부임한 양승호 감독은 로이스터 감독보다는 많았지만 타구단과 비교하면 많은 훈련량은 아니었다. 그러던 터에 김시진 감독이 팀을 맡으면서 훈련량이 더 늘었다는 평이다.
김 감독은 “넥센 시절과 비교해서 크게 차이가 없다. 지금이 조금 지칠 시기여서 조절하는 중”이라며 결코 훈련량이 많지 않다고 밝힌다. 사실 넥센 시절 훈련 스케줄표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롯데 선수들에게는 운동장과 숙소 사이의 거리가 2배 가량 늘어남에 따라 러닝과 자전거 훈련량이 배가된 셈이다. 롯데 선수들은 이틀에 한 번 정도씩 자전거를 이용해 훈련장까지 출퇴근을 한다.
덕분에 롯데 선수들 특히 투수들은 하체가 탄탄해지고 있다고. 김 감독은 “투수들의 몸 비율은 하체 6-상체 4가 가장 좋다. 튼실한 하체를 바탕으로 해야 힘있는 공과 컨트롤이 생긴다”며 하체 훈련을 많이 시키는 이유를 설명한다.
투수들은 고참들도 예외가 없다. 모든 일정을 신예투수들과 똑같이 소화해야 한다. ‘생존싸움에서 살아남는 선수’만 1군에서 쓰겠다는 것이 김 감독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야수들도 경쟁자끼리 타격훈련조를 짜는 등 어느 때보다도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 돌아온 유격수 박기혁과 지난 시즌까지 주전 유격수 문규현을 타격훈련 한 조로 편성하는 등 포지션별로 경쟁자들을 한묶음으로 훈련을 시키고 있다.
이전에 알고 있던 김 감독의 모습과 조금은 다른 면에 구단 관계자들은 “우리 감독님은 ’젠틀한 독종‘”이라고 부른다. 사이판 전훈을 지켜보며 지원하고 있는 배재후 단장은 “선수들의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등 감독님의 지도스타일이 남다르다.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자상하게 지도를 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승부욕을 불어넣고 있다. 올 시즌 호성적을 위해 ’젠틀한 독종‘이 되려고 하는 것 같다”고 평한다.
‘젠틀한 독종’이 새별명이 됐냐는 물음에 김 감독은 “사람 천성이 어디가냐”며 그냥 슬쩍 웃어넘긴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제는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동안은 팀전력과 팀사정 등으로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롯데에서는 변명이 필요없다. 무조건 우승을 목표로 팀을 운영해야 한다”며 올 시즌을 벼르고 있다.
이런 점이 알게 모르게 드러나면서 김 감독은 ‘부드러운 독종’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선수시절부터 불려온 별명 '꼴뚜기'는 더 이상 김 감독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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