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연예계의 여러 가지 친목단체 중 1976년생 동갑내기들의 모임인 '76년 용띠 모임'이 있다.
이 모임 멤버로는 조성모 홍경인 홍경민 김종국 장혁 그리고 차태현이 있다. 이들은 만나면 일보다는 주로 사적인 화제로 얘기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중에서 김종국은 근육을 뽐내고 장혁은 절권도 예찬에 열을 올리는 등 나름대로 자신만의 관심사를 화제로 떠올리는데 차태현은 비교적 관조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많은 작품 속에서 보듯 웃음을 담당한다.
차태현은 참으로 보기 힘든 개성으로 꽁꽁 무장한 배우다. 누가 뭐래도 그는 원톱이 가능한 정상급 배우지만 장동건의 꽃다운 조각얼굴도, 권상우의 근육질도, 차승원의 남성미도 없는 배우다.

여성팬들은 소지섭 현빈 강동원 원빈 조인성 등을 떠올리면 가슴 설레고 어딘가 범접 못할 경외감을 느끼지만 차태현에게서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차태현은 분명히 연예인이고 톱스타다.
신인시절이건 스타가 되고 나서건 변함 없는 연예인으로 꼽자면 단연 차태현이다. 현재의 그를 건방지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신인시절 그는 '건방지다' '버릇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 숙이고 부탁해야 할 처지의 신인 탤런트로서 시건방지게 행동할 이유는 없었고, 그의 천성이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스타일도 아니었는데도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은 그의 가식적이지도 형식적이지 못한 본성 때문이었다.
그는 꾸며서 상대를 대할 줄 모르고 자신의 심리상태를 거짓으로 포장할 줄 모른다. 그저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행동할 따름이다. 그가 스타덤에 오르고 나서 한 언론과 인터뷰할 때 갑자기 피곤하다며 누워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싸가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진짜로 그냥 앉아있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차태현을 좋아한다. 공교롭게도 그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맡는 역할은 그의 본성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 솔직하고 편안하며 거짓으로 포장할 줄 모른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게 그다.
그래서 그는 천성적으로 맑은 개구쟁이다. 솔직하고 소박하며 꾸밈이 없다. 남을 배려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스타일도 아니다. 얼핏 보면 개인주의가 강하지만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 그다.
그래서 차태현은 코미디에 강하다. 1997년 영화 '할렐루야'의 단역으로 코미디의 시동을 건 그는 2001년 '엽기적인 그녀'로 코미디의 왕자로 단숨에 우뚝 선다. 여기서 그가 연기한 견우는 딱 차태현이었다. 거칠고 자기 멋대로며 엉뚱한 그녀(전지현)의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과 폭행을 묵묵히 다 받아주면서도 자신의 욕심이라고는 티끌만치도 내세우지 않는 '순진남'은 순수한 영혼의 차태현 그 자체였다.
그후에도 그는 맡은 역할이 코믹요소가 있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복면달호' '과속스캔들' '헬로 고스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모조리 흥행에 성공시켰다. 순수 멜로 '연애소설'만 예외였을 뿐이다.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예능 KBS2 '1박2일'도 그를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는 케이스다. '1박2일'은 멤버들이 전국 각지를 돌며 생존하는 서바이벌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차태현은 허당스럽지만 솔직하고 때묻지 않은 인간성으로 시청자들에게 꾸미지 않은 웃음을 선사한다. 차태현은 가만히 보기만 해도 웃기는 캐릭터다. 그것은 그가 웃기게 생겨서가 아니라 그라는 사람 자체가 순수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KBS2 '전우치'는 차태현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에게 전형적인 차태현의 캐릭터를 승계하는 이치와 지금까지 차태현이 작품 속에서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진지하고 강인한 전우치의 1인2역을 맡긴 것은 애초부터 성공확률이 떨어지는 무리수였다.
영화 '전우치'는 타이틀롤을 맡은 강동원에게 돈과 여자를 밝히고 장난기 가득한 전우치를 그려내게 했지만 드라마 '전우치'는 차태현에게 진지하고 심각하며 막강한 무술을 가진 액션스타를 요구한다.
차태현이 습관성 어깨 탈골증으로 액션연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그의 핸디캡이다.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그의 체형이나 스타일은 액션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지금까지 웃기는 이미지가 굳어진 차태현의 얼굴에서 진지한 액션스타를 발견하는 것은 개그맨에게 최루연기를 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차태현이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주특기가 한쪽에 몰려있는데다가 워낙 그 분야에서 최절정이기 때문이다.
수염을 붙이고 동그란 뿔테안경을 착용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이치는 참으로 재미있고 차태현에게 안성맞춤의 옷을 입혀놓은 듯하다. 하지만 정돈하지 않은 장발의 헤어스타일로 하늘을 날고 수십명을 단숨에 해치우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전우치는 차태현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약은 적재적소에 적당량을 투약할 때 약효를 발휘하지만 과하거나 오용하게 하면 독이다.
드라마 '전우치'는 차태현이라는 웃음의 만병통치약을 진지한 캐릭터에 투약함으로써 드라마의 병세만 악화시켰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