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서 이처럼 '시원한' 액션을 볼 수 있었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만 볼 수 있었던 화려하고 현란한 액션이 배우 하정우, 류승범 그리고 한석규 등 국내 배우들의 몸짓에서 나오게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마치 진짜 첩보요원들이 한판 승부를 벌이듯 정확하게 맞춰진 액션과 폭력적이라기보단 시원하다는 느낌에 가까운 현란한 액션 뒤에는 액션에 천부적인 감각을 보인 류승완 감독과 더불어 한국영화의 액션을 책임지고 있는 정두홍 무술감독, 이 두 사람이 있었다.
특히나 정두홍 무술감독은 북한 공작원들의 무술인 격술을 바탕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끔 하는 액션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게다가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열연은 영화 '베를린'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

지난달 31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OSEN과 만난 정두홍 무술감독은 '베를린'을 촬영하며 고생 많이 했다고 껄껄 웃어 보인 뒤 '베를린'이 여타의 할리우드 액션영화와 다른 점을 설명해주며 한국 액션이 외국에서도 통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또한 스턴트맨, 무술감독이 지녀야 할 자부심을 말하는 그의 모습은 엄숙함마저 나타났다.

- '베를린' 액션,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 액션에서 제일 첫 번째로 생각하는 것은 상황이다. 인물이 왜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인물이 국정원 요원인지 혹은 무술인끼리의 싸움이라든 지를 생각한다. 그것을 먼저 생각해야 감정이 깔리기 때문에 그게 제일 우선시된다. '베를린'은 첩보영화이기 때문에 일반인의 싸움하고는 달라야 했다. 그래서 거기에 맞는 옷을 입혀주는 게 우선시됐다. 그리고 '베를린' 액션의 또 다른 콘셉트는 '고통'이었다. 고통지수가 관객들이 경험해본 근사치에 가까울수록 더 좋은 액션이 나오는 것 같다. 고통 부분에서 많이들 공감하시면서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 '베를린'이 할리우드 영화인 '본' 시리즈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 '본' 시리즈와는 전혀 다르다. '베를린'에는 서양인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아시아인들의 임팩트, 스피드 그리고 파워가 있다. 잘 보시면 알겠지만 '본' 시리즈에는 카메라를 흔드는 효과가 나온다. 우리는 속도가 빨라 보여도 카메라를 흔드는 것이 전혀 없다. 카메라에 진동을 주지 않고 그 안에서 스피드있게 파워풀하게 그리고 고통을 느끼도록. 그것이 우리의 콘셉트다. 또 첩보요원들 간의 싸움이기 때문에 일격필살과 같은 손동작에 중점을 뒀다.

- 그러고 보니 극 중 인물이 넘어질 때 바위나 물건 위에 넘어지면서 고통을 느끼게끔 한 것 같다. 또 눈길을 끄는 장면들도 많았는데 가령 하정우가 캔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장면 등 말이다.
▲ 액션은 동작이 빨라서 같이 뭉개져 간다. 샷이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작은 장면들을 놓치기 쉬운 것이다. 캔으로 때리는 장면은 원래 콘티에는 없었다. 원래는 냉장고 문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뭐 하나 쓰면 안 될까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류승완 감독에게 '이따 내가 기막힌 거 하나 보여줄게' 먼저 제안을 하고 리허설 때 냉장실에 있는 캔을 꺼내 액션을 보여줬다. 말하자면 즉석 아이디어였다(웃음).
- 와이어 액션도 돋보였다.
▲ 엄밀히 말하면 와이어 액션이 아니다. 와이어는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안전을 위해 쓰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 (사람을) 떨어뜨렸다.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스턴트맨에게 안전을 이야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물론 안전이 기본이 돼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관객들의 보는 고통을 최대한으로 느끼게 하려면 진짜 해야 한다.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죽지 않는 것 보면 직업의식 때문인 것 같다(웃음). 훈련하면서 나도 모르게 체득된 낙법과 보호본능이 나온다. 술 먹고 넘어질 것 같으면 나도 모르게 낙법을 하고 있다(웃음).

- 영화 '지.아이.조2'와 '레드2' 액션에도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어땠나.
▲ 우리의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국내에서 지적받았던 액션이 거기서는 눈들이 휘둥그레 커진다. 한국 액션은 할리우드 액션과 다른 미묘한 맛이 있다. 거칠기도 하고 파워도 있고 스피드도 있고 게다가 실감이 난다. 할리우드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내가 하는 액션을 보고 깜짝 놀라더라. 진짜 우리 액션에 반했다. 한국 액션의 특징을 꼽자면 리얼리즘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내 액션을 한 번 보더니 대접이 달라지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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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