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코치 시절 가끔씩 투수들이 커피를 타줄 때가 있었는데 상현이가 타주는 커피가 가장 맛있었다”.
김진욱 두산 베어스 감독은 잘 알려진 ‘커피 마니아’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커피 섭취량이 많이 줄어 들었으나 예전에는 하루에 스무 잔 넘게 마시던 커피광이었다. “다방 커피를 좋아한다”라며 웃은 김 감독의 구미에 가장 알맞은 커피를 제공하던 ‘김지토’ 김상현(33)이 이제는 두산 투수진의 마스터키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전지훈련이 한창인 두산. 현재 두산 마운드는 3,4선발로 활약이 기대되던 이용찬이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수술대에 오르며 비상이 걸렸다. 이용찬은 팔꿈치 뼈가 웃자라 통증을 일으키는 주관절 충돌 증후군으로 인해 지난 1일 귀국 후 5일 서울 김진섭 정형외과에서 뼈를 깎아내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재활만 해도 4~5개월이 걸려 전반기 출장이 불투명하다.

현재 이용찬이 비운 선발 보직을 메울 후보로 꼽히는 이들은 서동환과 원용묵 두 명의 2005년 입단 동기생들.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1군 풀타임 경력이 없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노출하고 있다. 두 명의 후보들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시 자연스레 그 대안으로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두산 마운드는 그에 대한 대안도 확실히 세워두고 있다. 올 시즌 롱릴리프로 점찍어 둔 우완 김상현이 주인공. 2001년 2년제 제주 한라대를 졸업하고 두산에 2차 1라운드 지명된 김상현은 2007시즌부터 2009년까지 1군 마운드의 주축 투수로 활약한 바 있다. 2008년 44경기 6승 2패 평균자책점 2.40으로 빼어난 성적을 올린 김상현은 2009시즌 초반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활약하며 7승을 수확한 동시에 연봉 1억원 고지까지 밟았다.
낙차 큰 커브에 권명철 코치로부터 슬라이더까지 습득하며 업그레이드된 투구를 보여주던 김상현. 그러나 2010년 김상현은 우측 정강이 골지방종 판정을 받으며 일찌감치 시즌 아웃되었다. 골지방종 판정 이전에는 당시 KIA의 ‘스나이퍼’ 장성호(현 롯데)와 1-1 맞트레이드 합의까지 나오며 마음고생을 했다. 2011시즌에는 한여름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분전했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마감한 김상현이다.
팔꿈치 수술에 이은 재활로 인해 지난 시즌 1군 합류가 늦었던 김상현은 주로 계투 추격조 등판하며 15경기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3.15의 성적을 남겼다. 김상현이 재활하던 동안 두산에서는 검증되지 않았던 선발 김승회(롯데), 노경은과 이용찬이 자리를 잡아가는 바람에 팬들 사이 김상현의 존재가치가 옅어지기도 했으나 팀 내에서는 김상현의 2012시즌에 대해 ‘감을 잡아가는 시기다. 본격적인 승부수는 2013시즌이 될 것’이라며 조용한 기대감을 비췄다.
김 감독은 김상현에 대해 “아직 선발로 확실히 긴 이닝을 소화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롱릴리프 및 계투 추격조로서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구력이 좋은 투수이기 때문”이라며 의외의 다크호스가 될 가능성을 주목했다. 선수 본인도 지난해 갑작스러운 부친상은 물론 팔꿈치 재활로 힘든 한 해를 보낸 만큼 등번호도 27번으로 바꾸며 새 각오로 훈련 중이다. 27번은 과거 박명환(전 LG), 다니엘 리오스(전 야쿠르트) 등 팀을 대표하던 우완 에이스들의 번호였다.
게다가 2013시즌은 홀수 구단 체제로 맞는 만큼 들쑥날쑥한 일정은 물론 장마철까지 겹친다면 선발과 계투를 겸업할 수 있는 전천후 투수의 활용도가 더욱 중요해지는 한 해다. 김상현의 스프링캠프 몸 만들기가 수월하게 이뤄진다면 오히려 핵심 스윙맨의 역할은 경험을 갖춘 김상현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프로야구 전체를 돌아봤을 때 2년제 대학 출신으로 프로 무대에서 어느 정도 족적을 올린 선수는 김상현이 거의 유일하다. 또한 김상현은 그동안 기록에서 크게 공헌도를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야구 관계자 사이에서 “어느 팀에 가도 1군 주력 투수가 될 만한 기량”이라는 평을 받는다. 선발로 맹활약을 펼쳐도 그동안은 승운이 따르지 않던 불운한 케이스의 투수였다. 김 감독의 구미가 가장 알맞는 커피를 제공하며 ‘투수진의 바리스타’가 된 김상현이 이제는 팬들의 입맛에 맞는 성적을 전달하는 바리스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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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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