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의 김윤석이 예쁘게 다듬고 잘 빠진 느낌이었다면, '남쪽으로 튀어'(6일 개봉)의 김윤석은 김윤석 본연의 맞춤 캐릭터란 느낌이 든다. 그 만큼 김윤석이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김윤석이 아니면 그 누가 최해갑이란 인물을 저렇게 카리스마 있고 나름 섹시하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지난 해 '도둑들'로 1200만여명을 동원한 김윤석이 '남쪽으로 튀어'로 돌아왔다. 그는 운동권 출신 아나키스트로 변신했다. 국민으로서의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무원에 대해 "나 국민 안해!"를 외치고 주민등록증을 북북 찢어버린다. 강요받기를 싫어하고, 할 말은 꼭 해야하며 반대로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판타지에 비호감일 수도 있는데, 이 인물을 얼마나 사랑스럽고 설득력있게 그려내는지가 관건.
일단 성공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원작 소설 속 주인공보다 훨씬 한국적으로 재탄생한 최해갑은 김윤석은 관객들을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게도 하고, 뜨끈한 무언가를 심어주기도 한다. 김윤석에게 '남쪽'은 어떤 의미일까?

- '도둑들'이 '김윤석이 저런것도 되네?'란 느낌이었다면 '남쪽으로 튀어'는 본연의 김윤석과 꼭 맞는 캐릭터인 것 같다.
▲내가 어떤 느낌인가? 관객들이 내게 어떤 느낌을 받는 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 역을 해도 소위 말하는 '더티 섹시' 상남자의 매력이 풍겨나오는데) 하하. 영화에서 안 씻었을 뿐인데.
- 그간 임순례 감독의 영화와는 다르다는 반응이 있다. 임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 초반 코드가 소소하게 가는 것은 임순례 감독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질 것이다. 임 감독님이 가진 차분한 절제력이 있다. 감독님은 자유롭고 배우들을 풀어주고, 성급하지 않고 느긋하게 하면서도 놓칠 것은 안 놓치고 가는 여백의 미가 있다. 배우의 대사가 끝나도 컷을 하지 않고 여운을 준다. 그리고 배우의 눈빛을 절대 안 놓치려고 한다.
- 지금껏 작업한 감독들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 같은데?
▲나홍진 감독은 깊이 파고드는 것이 있고, 최동훈 감독은 리드미컬하게 가는 게 있다. 임순례 감독은 '이것을 보라'고 강요하는 느낌을 안 준다. 보는 사람한테도 여유를 주고 '여기만 봐'라는 것이 아닌, '선택해서 봐라' 이런 것이다.
- '남쪽으로 튀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영화는 따뜻함과 코미디가 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행복의 가치관이 각자 다 다르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일류대학을 가는 것과는 또 다르게 행복해지는 방법이 개인마다 다르다. 이 이야기는 결국 가족의 행복과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 한다. 해갑은 늘 웃고 있다. 옥상에서 시위할 때도 웃는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부딪혀도 그 사람들을 결코 미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기에 길을 열어놓고 만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각색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일본이 우리나라와 가깝지만 워낙 민족성이 다르다. 원작을 보면 좀 더 주인공이 극단적이고 사무라이 기질이 있다. 이는 우리의 정서와는 또 다르다. 우리는 가족들과의 유대관계가 더 끈끈하다. 또 우리는 마당놀이처럼 한바탕 즐기는 정서 아닌가. 울다가 샥 웃음이 나오고 풍자, 해학, 넉살이 있고. 우리와 리듬과 멜로디가 다르다. 난 우리 영화의 느낌이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애정이 간다.
- 최해갑과 본인이 비슷한 점은?
▲옷차림은 정말로 똑같다. 반팔 러닝을 달고 산다. 아이들과 친구들과 지낸다는 것도 비슷하다. 애들이 내가 밤을 새고 일하고 오면 내 방에 올라와 막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또 자기가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간다는 것도 닮았다. 나도 오랜 시간 연극을 했으니까. 자기가 힘들어도 그렇게 한 길로 갔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 비슷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적인 면은?) 예전에는 다 같이 놀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 같이 공부하자란 분위기다. 다 같이 공부를 안 시키면 모를까, 어쩔 수 없는 분위기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공부는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야지. 내가 못 했기 때문에 공부는 강요 안한다. 하하.
-386세대인 본인에게 최해갑에 대한 공감대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내가 대학 다닐때도 계속 데모가 있었고, 휴교도 하고 그랬다. 난 운동권은 아니었다. 연극한다고 정신없었지. 다들 지금 뭐하고 있을까, 란 생각을 가끔 한다. 취직을 해도 그 세계랑 완전히 '안녕' 한 사람도 있을거고, 여전히 그 정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해갑이 같은 인물이 살고 있다면 반가울 것 같다. 순수하고 멋있지 않나. 돈 생각을 가장 많이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니까. 또 내가 현실에서 못하는 걸 해갑이가 해주니까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성인 판타지 같은 느낌이 있을 거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면서 '쟤들 행복하게 잘 됐으면 좋겠다'란 생각도 할 수있을 거다. 가족도 생각해보고, 아이들은 아빠를, 부모는 아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인가?
▲물론이다. 아무 조건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가족 외에는 없다.
- 주변에 최해갑 같은 사람이 있나?
▲'척' 하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진짜 최해갑처럼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 결말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사실 힌트가 있는데, 결말을 오픈시켜 놓았다. 분명한 것은 우리 정서는 가족을 버린다는 것과 안 맞는다는 것이다.
- 대모도 신이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전기도 없고 물고 없고 날씨는 굉장히 더웠다. 물론 에어컨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너무 더우니 뭘 먹을 생각도 못하더라. 잘 씻지도 못했다. 여자 스태프분들도 생각보다 잘 안 씻는 것 같은데. 하하. 분장이 소용이 없었다. 땀이 줄줄 흐르니까. 영화를 보면 살이 다 타서 까맣게 다 나온다.하지만 그 섬은 너무 아름답고 주민들은 잘 살고 있다. 그래서 타지에 온 사람들이 불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정도 힘든게 뭐 대수인가.

- 유난히 육체적으로 힘든 영화를 많이 찍은 것 같은데?
▲에이, 이건 '황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1년을 찍지 않았나. '추격자'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달리고 쫓고. '도둑들'도 와이어 타고 그랬지. 다들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좋은 거다. 그러고 보니 '완득이'가 가장 힘이 덜 들었네.
- 오연수와 은근히 잘 어울린다.
▲하하. 오연수 씨는 보기와 달리 털털하고 사람이 정말 좋다. 평소의 모습은 되게 일반인스러운 면이 있다. 겉모습만 보면 서울 깍쟁이같은데 안 그렇다. 오연수 씨도 아들 둘이 있고, 나는 딸이 둘 있어 서로 자식 이야기도 많이 했다. 의리있고, 말이 많지도 않고 남자다운 느낌도 있다.
- 흥행에 연달아 성공한 것이 나름 부담이 될 것도 같은데?
▲흥행 불패란 수식어에 그저 웃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객했다면 '완득이'는 못 했을 거다. 그런 것들을 보면 진정성있게 내가 택한 시나리오가 맞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실패할 수 있다. 신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게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내가 설득당한 '남쪽으로 튀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큰 영화에 대한 제의도 많았지만, 이 이야기가 내 흥미를 끌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그런 선택을 할거다. 사이즈는 관계 없다. 이야이의 진정성이 중요한데 다양한 장르에서 감독님과 관계자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 배우 하정우와 이번에는 라이벌이다.
▲하정우 뿐이랴. '도둑들' 전지현 이정재도 있다. 배우의 운명은 때로 그렇다. 정우와는 문자로 서로 화이팅하자고 했다. 정말 '윈-윈'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뿌듯한 것은 장르의 다양성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보통 설에 개봉 하는 영화들은 조폭코미디, 액션물, 할리우드 영화 위주였는데 2013년 1월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나오는 것 같다. 상반기 뿐 아니라 하반기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올해가 지난 해보다 흥행은 더 대박일지는 모르나 질적으로 되게 우수한 방점을 찍는 영화들이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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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