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로 다가온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공인구는 롤링스 사(社)에서 제조한 공으로 결정됐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이다. 앞선 두 번의 대회도 모두 같은 공을 공인구로 사용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나 지난 두 번의 대회 가운데 한 번이라도 출전했던 선수라면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겠지만 생전 처음 WBC 공인구를 사용해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선수들은 적응이 필수다. 때문에 한국야구위원회는 WBC 사무국으로부터 미리 공인구를 받아 각 구단에 2박스씩 나눠줘 선수들의 적응을 도왔다. WBC 대표팀 합류가 결정된 선수들은 이미 전지훈련 캠프에서 공인구로 연습을 하고 있다.
WBC 공인구의 가장 큰 특징은 미끄럽다는 점. 1회와 2회 대회때도 미끄러운 공이 변수로 작용했었다. 공이 미끄러우면 야수 보다는 투수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아무래도 타자에게 유리한 공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민태 롯데 투수코치는 "WBC 공인구가 미끄러운데 모든 공을 던지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특히 공에 회전을 줘야 하는 변화구를 구사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적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회 대회에서 이미 공인구를 만져봤던 윤석민(KIA)은 "던질 때 쭉 미끄러진다"고 말하고 앞선 두 번의 WBC에 모두 출전했던 정대현(롯데)은 "공인구가 미끄러운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응하면 큰 문제는 없다. 최대한 많이 던져보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정대현은 팀의 1차 전지훈련지였던 사이판에서 KBO 공인구 대신 WBC 공인구만으로 모든 훈련을 소화했다.
일본 대표팀 역시 WBC 공인구에 적응하는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좌완 우쓰미 데쓰야(요미우리)는 "체인지업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체인지업은 공과 손바닥이 맞닿는 면적이 다른 구질에 비해 높은 편인데 이 공을 마음 먹은대로 던질 수 있다면 다른 구질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또한 좌완 스기우치 도시야(요미우리)는 "공이 미끄러우니 (진흙을 묻히든지 해서) 던지기 편하게 만들어라"고 후배 들에게 조언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국내파로 대표팀을 꾸렸기에 WBC 공인구가 핵심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선 두 번의 대회는 공인구부터 시작해서 구장, 시간 등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준비해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두 팀은 이번 대회도 활약을 다짐한다. 그렇다면 바뀐 공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재미있는 한 예가 있다.
이번 WBC 공인구를 제조한 롤링스 사는 줄곧 메이저리그 공인구를 만들어 왔다. 그들이 곤경에 처했던 때가 있으니 바로 1987년. 이 해 홈런 개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공이 이상하다'는 투수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조사에 나섰고, 색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당시 공을 전수 제작하던 중남미 국가 아이티의 정치적 상황이 야구공에 영향을 줬다는 것.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987년 쓰인 공을 확인해 본 결과 평년보다 실땀이 덜 도드라진 것을 확인했다. 실땀이 단단하게 조여져 덜 도드라지게 되면 투수는 변화구를 던지기 힘들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를 1986년 축출된 아이티 독재자 장 클로드 두발리에에서 찾았다. 독재자가 축출되자 노동자들은 신이 나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게 되고, 이것이 실밥을 세게 조여매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이듬해 아이티에 정치적 혼란이 다시 찾아오고, 1988년 메이저리그 홈런 개수는 전년에 비해 29%나 급감한다. 믿을 수 없는 일화지만 이 이야기는 '행복한 아이티인 가설', 혹은 '롤링스 게이트'로 불렸다. 메이저리그 사무국만 '행복한 아이티인 가설'의 진실을 알겠지만 작은 변수가 야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수 있다.
cleanupp@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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