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번방의 선물’을 보다 보면 용구(류승룡 분) 딸 예승(갈소원 분)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예쁜 선생님이 등장한다. ‘진짜 선생님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아한 매력을 풍기는 배우, 신예 정한비다.
늦은 나이에 배우로 데뷔했지만 첫 영화에서 잭팟을 터뜨렸다. ‘7번방의 선물’은 500만 관객을 앞두고 있는 흥행작이다. 흥행의 기쁨과 동시에 스크린 데뷔작에서 무려 여섯 명의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영광을 맛봤다.
“쟁쟁한 선배님들이 대거 모인 곳이라 긴장되고 설렜어요. 여기서 못하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특히나 여배우들이 많이 안나와서 부담이 있었는데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고 많은 분량도 아니었고요.(웃음) 선배님들이 조언을 많이 해줘서 잘 헤쳐나갈 수 있었어요.”

정한비가 ‘7번방의 선물’과 인연을 맺게 된 건 평범하지만 쉽지 않은 과정 바로 오디션이다. 이환경 감독과 인사한 후 1주일 만에 다시 만나 오디션을 보고 바로 대본리딩에 투입됐다. 대본리딩 현장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류승룡 선배님 같은 경우는 지적 장애인 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보면 볼수록 대단해요. 대본리딩 때 어떻게 소화할까 궁금했는데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대단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흥행킹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오달수 선배님, 정만식 선배님 등 다른 선배님들도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연기에 발을 내디딘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 정한비에게 이번 영화는 말 그대로 배움의 장이었다. 특히 류승룡의 연기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고 팬이 됐는데 카사노바 캐릭터가 과장되게 보일 수 있는데 그렇지 않게 소화한 게 대단해 보였어요. 진정성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척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를 하니까 그렇게 훌륭히 할 수 있는 거죠. 저 같았으면 못하는 게 많았을 텐데 ‘7번방의 선물’을 찍으면서 애드리브와 같은 배우의 창의성을 배웠죠.”
최고의 연기력과 흥행성을 갖춘 류승룡은 다음에도 꼭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하는 배우였다. 정한비는 또 한 번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로 류승룡을 꼽으며 꼭 다시 연기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내비쳤다.
정한비가 흥행작의 주인공이 되고 충무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과 연기하게 된 건 모두 우연이었다. 그리고 그 우연은 운명이 됐다.
“친한 언니가 가수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 괜찮은 친구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해서 제 사진을 보냈대요. 그 사진이 다른 기획사로 가서 계약 얘기가 오가면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결국 계약은 안했지만 그걸 계기로 연기를 시작했죠. 그때는 정말 예쁜 사람들이 연기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내가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용기가 생겼죠.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어려웠지만 연기를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연기에 발을 내디딘 후 정한비도 누구나 하는 고민, ‘내가 이 일과 정말 맞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한 만큼 고민에 쏟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생각은 없지만 그때는 자고 일어나자마자 고민이 시작됐고 자기 전까지 계속됐죠. 그 정도로 간절했고 치열했어요. 친구들은 그래요. 제가 2~3년 하다가 그만둘지 알았다고요. 벌써 연기를 하겠다고 한지가 6~7년 됐어요. 지금도 계속 연기 연습하고 있어요. 작품을 쉬면 연기 리듬을 잃어버리니까 유지하려고 해요. 조급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쉽지 않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려고 항상 마인드 컨트롤을 해요.”
이제 한 계단 오른 정한비. ‘7번방의 선물’에서 자신의 이미지와 가장 가까운 선생님 역할을 통해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기에 연기에 대한 욕심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
정한비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어요. 악역도 해보고 싶고 망가지는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찌질해 보이는 그런 역할이요. 도전하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신인들이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가릴 것 없이 주어지는 걸 열심히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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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