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원칙을 지켰던 이만수(55) SK 감독이 한 발자국 물러섰다. 원칙에 다소간의 융통성을 발휘하며 숨구멍을 만들었다. 끝까지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에는 설왕설래가 있지만 이 감독도 마냥 손해 본 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SK는 7일 현재 국내에서 훈련하고 있는 8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오키나와 조기 캠프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대상자는 박경완(포수)을 비롯, 최영필 엄정욱 채병룡 송은범 전유수 김광현(이상 투수), 그리고 김강민(외야수)이다. 이들은 김원형 루키팀(3군) 투수코치, 허재혁 트레이닝 코치의 인솔 하에 오는 11일 오전 오키나와로 떠난다. 1주일 정도 몸 상태를 끌어올리다 18일 오키나와에 도착할 본진과 합류하는 일정이다.
이들의 조기 출국은 이 감독의 의중 변화에 따른 것이다. 현재 플로리다에서 전지훈련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 감독은 국내 잔류파 선수들의 훈련을 김용희 퓨처스팀(2군) 감독에게 위임한 상황이다. 그간 잔류파들의 몸 상태와 훈련 경과를 매일 보고받았던 이 감독은 김용희 감독의 합격 통보와 추천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국내 잔류파들의 전지훈련 합류 일정은 유동적이고 또 불투명했다. 이번에 조기 출국하는 8명의 선수 중 무릎 부상이 있었던 김강민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은 모두 팀의 체성분 테스트(체중, 체지방률, 근육량)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던 이들이다. 팀의 핵심을 이루는 선수들이었지만 이 감독의 원칙에는 여지가 없었다. 결국 따뜻한 플로리다 대신 추운 한국에 남아 훈련을 진행했다.
이 감독은 최근까지만 해도 이들의 캠프 합류 조건으로 “실전에 나설 수 있는 몸 상태”를 내걸었다. SK는 1월 말까지 팀 전술 숙지 훈련을 모두 끝냈다. 2월부터는 연습경기를 통한 본격적인 실전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에 뛸 만한 몸이 안 되는 선수들은 차라리 한국에 남아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이 낫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었다. 환경상 아무래도 컨디션 조율이 어려웠던 선수들인 만큼 오키나와 캠프도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 감독은 마음을 바꿨다.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자신이 세운 기준을 좀 더 유연하게 적용했다. 실제 이번 캠프 합류자 중 체성분 테스트의 기준치를 아직 맞추지 못한 선수도 있다. ‘실전용 몸 상태’의 기준도 흔들렸다. 어깨 재활에 들어간 김광현은 물론 엄정욱도 아직 실전에서 공을 던질 몸 상태는 아니다. 말을 바꿨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 감독 스스로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이미지 타격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다만 손익을 계산했을 때 얻는 것이 더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일단 이 감독은 “누구도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는 확고한 의사를 주축 선수들에게 전달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재활파 6인까지 한국으로 돌려보낸 이 감독의 결단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이미 어느 정도의 효과는 봤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한국에 남아 있는 선수들이 전력에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고려된 선택으로 보인다. 1월보다는 낫지만 2월의 한국 역시 정상적인 훈련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기후다. 눈이라도 내릴 경우 러닝할 장소마저 마땅치 않다. 자칫 잘못하면 몸을 제대로 못 만들어 시즌 초반 고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구단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2월 중순은 사실상 ‘마지노선’이었다. 다만 최근의 훈련 경과와 남은 일정을 살펴봤을 때 이 선을 넘지 않을 경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어린 선수들도 아니고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 아닌가. 2차 캠프 합류를 염두에 두고 착실히 몸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페이스가 아주 처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요약하면 명분 대신 실리를 취한 이 감독이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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