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도 윤석영(23)의 눈빛은 밝았다. 퀸스 파크 레인저스(QPR) 입단 후 첫 훈련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서의 첫 출발은 훈련부터 시작됐다. 'YUN'이라는 이름이 써 있는 정식 유니폼은 아니지만 등번호 '13'번의 트레이닝 복을 입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그렇게 윤석영의 첫 경험은 시작됐다.
크로아티아와 평가전이 끝난 후 이튿날인 7일(이하 한국시간) 윤석영은 영국 런던 인근의 QPR 훈련장에서 박지성(32)을 비롯한 선수들과 함께 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의 구애 끝에 QPR에 입단한 윤석영은 스완지 시티와 경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훈련을 마쳤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11번째 코리안 프리미어리거로의 출발이었다.
7일 런던의 숙소에서 만난 윤석영은 의외로 차분했다.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던 EPL서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시작을 알렸다.

"레드냅 감독님은 동네 아저씨 같아 보였습니다. (박)지성형은 마사지를 받고 오느라 늦으셔서 처음 훈련장에 갔을때는 보지 못했습니다. 로익 레미는 이미 한국과 크로아티아전에 구경을 왔길래 인사를 했었기 때문에 친근했습니다. 또 파비우, 그라네로랑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파비우와는 벌써 절친한 사이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특히 그와는 동갑이고 이미 2007년에 만난적이 있습니다. 2007년 17세 이하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될때 직전 열린 4개국 친선 대회서 함께 경기했습니다. 그때 파비우가 한 골 넣었는데 그 이야기를 가지고 잘난 척을 하길래 잘났다고 했습니다. 동갑이라 그런지 더 이야기도 잘 통했습니다".
K리그에서 브라질 선수들과 함께 생활했던 그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파비우와 대화를 했다. 뚜드벵(Tudo Bem)?(좋아, 괜찮아) 등 간단한 대화는 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처음 언어를 배울때 친근하게 쓸수 있는 단어들을 알고 있던 윤석영은 경쟁상대인 파비우와 몇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친근해졌다. 윤석영의 성격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브라질전이 끝난 뒤 도핑 테스트를 실시했다. 쉽게 끝나지 않는 동안 분을 삭힌 그는 브라질의 마르셀로와 또 친근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선수들과 상견례를 하고 훈련을 가지면서 윤석영은 정말 실감했다. 특히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더욱 느꼈다. 이미 첫 훈련을 마친 뒤 감독으로 부터 원정경기를 갈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 엔트리에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윤석영은 바로 데뷔전을 가질 가능성도 있게 됐다.
첫 훈련서 그는 전술훈련을 했다. 아르망 트라오레가 대표팀 경기를 뛰고 왔기 때문에 함께 훈련을 하지 못했지만 파비우와는 함께 했다. 또 박지성도 함께 하면서 새로운 면을 보게 됐다. '산소탱크'라는 별명답게 활동량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함께 훈련을 하면서 다른 모습도 보게 됐다.
"훈련을 마치면서 '이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전경쟁도 꼭 승리해서 좋은 선수로 남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QPR에서 첫 훈련의 느낌은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16세 이하 대표로 스페인과 대결을 했을 때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경험을 쌓고 나면서는 점점 부담이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오늘도 훈련을 해보니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생각보다 부담이 줄었습니다. 그만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앞둔 윤석영의 롤 모델은 호르디 알바(FC 바르셀로나)다. 작은 키(170cm)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스피드와 폭넓은 활동량으로 최고의 선수 자리에 올랐다. 지치지 않는 체력도 알바의 장점이다. 윤석영은 알바처럼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원래 롤 모델은 가레스 베일(토튼햄)이었다. 그러나 포지션을 변경했기 때문에 롤 모델이 아니라 경쟁상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는 하석주 전남 감독의 조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석주 감독은 "거친 유럽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싸움 능력을 키워야 한다.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채찍질을 가한 바 있다. 같은 포지션의 후배가 EPL로 진출했기에 내놓은 충고였다. 윤석영은 이에 대해서도 고맙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인사도 못한 가운데 떠나왔기 때문에 스승의 조언이 그에게는 굉장히 소중했다.
강등 위기의 QPR로 이적하는 것에 대해 윤석영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입단할 때 고민이 많았지만 마음을 고쳐 먹었다. 현재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MK돈스의 경기력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만큼 잉글랜드 축구의 수준이 높고 비슷하기 때문에 QPR에서 열심히 한 뒤 새로운 기회를 만들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구단으로 가고 싶어요. 맨체스터 시티나 FC 바르셀로나와 같은 구단들입니다. 만약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불가능은 없다는 것이 제 신조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며 윤석영에게 다시 물었다.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 같냐는 질문이었다. 윤석영은 정확하게 말했다. 성공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했다. 쉽지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첫 발을 내딛었지만 분명 자신감에 넘쳤다. 어린 나이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QPR서의 선수생활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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