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에게 있어 겨울은 ‘희망’을 의미한다. 주전 선수나 비주전 선수나 모두 제각각의 희망을 공평하게 품을 수 있는 시기다. 한 때 SK의 마운드를 이끌었던 ‘왕년의 에이스’들에게도 2013년 겨울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SK는 지난 6일(현지시간) 두 번째 자체 홍백전을 가졌다. 첫 번째 홍백전에서 여건욱과 문승원이라는 신예들이 선발 출격의 기회를 얻었다면 두 번째 홍백전은 좀 더 낯익은 이름이 선발로 마운드에 섰다. 바로 제춘모(31)와 신승현(30)이다.
두 선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젊은 시절 SK의 마운드를 이끌었던 기억이다. 쌍방울을 인수해 재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SK 마운드는 지금처럼 강하지 못했다. 그 가운데 고군분투를 이어갔던 선수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SK의 팬들이라면 이날 홍백전의 선발 라인업은 묘한 감정을 주기에 충분했다.

2002년 2차 1라운드 1순위로 SK에 지명된 제춘모는 데뷔 시즌 9승7패 평균자책점 4.68로 활약했다. 이듬해에는 10승(6패) 고지를 밟기도 했다. 2000년 지명된 신승현도 프로 적응기를 거쳐 SK 유니폼과 함께 날아올랐다. 2005년에는 12승9패 평균자책점 3.38로 팀 마운드의 구심점 몫을 톡톡히 했고 2006년에도 8승을 수확했다.
좋은 시절은 강렬했다. 문제는 그 시절이 짧았다는 데 있었다. 에이스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제춘모는 2004년 4승 이후 지금까지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다. 신승현도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할 만하면 부상이 찾아왔고 병역의무를 이행하느라 흐름이 끊기기도 했다. 그 사이 후배들이 쑥쑥 성장한 SK의 마운드는 강해졌다. ‘약해진’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끝났다고 보기는 이르다. 여전히 30대 초반의 선수들이다.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좋은 시절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선수들의 의욕도 불타오른다. 충실히 훈련을 했고 첫 홍백전에서도 나란히 2이닝 무실점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신승현은 경기 투수 부문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아직 확고한 자기 자리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이들이 1군 마운드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전성기 때와는 다르다. 지난해 신승현은 1군에서 5경기, 제춘모는 8경기 출전에 그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언제든지 2군으로 내려가는 불안한 신세다.
그러나 이들이 겨우내 흘린 땀은 1군의 두꺼운 벽에 조금씩 틈을 내고 있다. 첫 실전에서 나름대로 좋은 투구를 함에 따라 그 틈은 더 넓어졌다. 이렇게 신승현과 제춘모가 예전의 영광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시즌 초반 마운드 운영에 물음표가 있는 팀으로서는 더 없이 반가운 일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