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지난 시즌만해도 아사다 마오(23, 일본)에게 있어 트리플 악셀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존재와도 같았다. 끈질긴 도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로 이어진 트리플 악셀은 아사다의 그림자이자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여겨졌다.
회전수 부족과 착지 실패가 반복되며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은 '양날의 검'처럼 변해갔다. 성공의 순간만을 그리며 도전하고 또 도전했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계속되는 실패였다. 감점 요인은 물론이고 전체 프로그램 소화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많은 전문가들이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에 대한 고집에 고개를 내저었다. 일본 언론조차 비난 일색이었다.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 시도에 대해 "고집 때문에 대회를 망친다", "불안한 정신상태에 마음이 동요하고 있다"며 트리플 악셀을 포기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에 대한 욕심을 버렸을 때 더 좋은 성적을 냈다. 아사다는 지난 해 11월 러시아에서 열린 '2011-201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시리즈 로스텔레컴컵'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할 때 트리플 악셀을 포기하면서 부진 탈출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을 지우며 안정을 되찾았고, 2012-2013시즌에도 준수한 성적을 남기게 됐다. 일본 내에서도 트리플 악셀을 버리고 안정감을 찾은 아사다에 대해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온 아사다의 선택은 다시 트리플 악셀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이유의 정점에는 김연아(23, 고려대)의 존재가 서있다. 항상 아사다를 한걸음 더 앞질러가는 김연아의 존재는 트리플 악셀과 함께 그를 압박했다.
사실 주니어 시절부터 아사다의 장기는 트리플 악셀이었다. 특히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여자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하며 시니어 못지 않은 높은 점수를 받아 화려하게 우승을 거머쥐었다. 독보적인 세계 여자 톱 싱글 스케이터 자리를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세계의 관심이 '트리플 악셀의 아사다'에게 집중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김연아의 등장으로 인해 아사다는 주니어 세계선수권 2연패에 실패하고 큰 점수차로 우승을 내줬다. 언론에서 아사다와 김연아의 라이벌 관계를 부각시키면서 크게 흔들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주니어 시절에는 가볍게 성공할 수 있었던 트리플 악셀의 성공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트리플 악셀 연습에만 매달렸던 것이 화근이 됐다.
스타가 필요한 여자 피겨계에서 김연아와 아사다의 관계는 라이벌로 재탄생해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찍었다. 드라마의 '시즌 1'이 마무리된 곳은 밴쿠버였다. 아사다는 조연처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228.56점이라는 신기록을 써내려가며 완전무결한 우승을 거머쥐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그리고 그 후, 아사다는 깊은 부진의 늪에 빠졌다.
부진과 트리플 악셀과 김연아는 아사다에게 있어 삼위일체와도 같았다. 김연아라는 높은 벽과 뜻대로 되어주지 않는 트리플 악셀은 부진을 낳았고, 아사다는 부담감에 허덕였다. 하지만 김연아가 휴식을 선언하며 은반에서 사라졌고, 자신을 괴롭히던 트리플 악셀을 버림으로서 심리적 부담감을 떨치고 부진에서 벗어난 것이 이번 시즌 선전의 결과였다.
하지만 기쁨에 취해있을 겨를이 없었다. 김연아가 현역 복귀를 선언했고, 1년 8개월 만에 은반에 돌아오더니 현역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을 압도하는 기량으로 단숨에 올 시즌 최고점인 201.61점을 기록했다. 심지어 김연아의 복귀전인 NRW트로피는 같은 기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프레올림픽' 그랑프리 파이널을 뛰어넘는 관심을 받았다. 아사다가 트리플 악셀을 버리고 우승한 바로 그 대회를 말이다.
아사다에게는 이제 단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았다. 돌아온 '넘사벽' 김연아에게 대항하기 위한 그만의 기술, 결국 트리플 악셀이다. 자기 스스로도 "모험을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트리플 악셀 시도 자체가 모험임을 알고 내린 결정이다. 주니어 시절과 달리 시니어에서는 성공한 적이 거의 없는 이 점프가, '점프의 정석'이라고 불리는 김연아의 순도 높은 점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 된 것이다.
바뀐 룰 개정도 아사다의 결심에 불을 지폈다. ISU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바꾼 룰에 의하면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에서 실패해도 기초점과 중간점에서 충분한 점수를 챙길 수 있게 됐다. 여러 모로 '실패하더라도' 트리플 악셀을 뛰는 것이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더욱 좋은 환경이 조성되면서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에 대한 열망을 다시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이번 4대륙선수권대회다. 아사다는 이번 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프로그램 모두 트리플 악셀을 집어넣으며 총점 205.45점(쇼트 74.49점+프리 130.96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트리플 악셀 재시도 선언 이후 처음으로 얻은 성과에 아사다는 "쇼트프로그램서는 연습 이상, 프리프로그램서는 연습한 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프리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연습 이상의 결과를 (세계선수권대회서)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일본 언론의 태도도 180도 바뀌었다. 트리플 악셀에 도전하는 아사다, 성공한 아사다를 집중 조명하며 "완전 부활" "노력하는 천재"라며 치켜세우고 있다. 지난 시즌과는 판이하게 다른 평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돌아온 김연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아사다가 잘 해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포기해야 한다고 비난하던 트리플 악셀에 관대해진 것도 김연아에 대한 견제 심리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다.
이처럼 아사다와 트리플 악셀의 관계 뒤에는 김연아에 대한 강한 집착이 숨어있다. 본의 아닌 삼각관계인 셈이다. 이번 시즌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맞대결은 오는 3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다. 룰 개정의 여파와 함께 김연아에게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과연 아사다가 꺼내든 최후의 카드 '트리플 악셀'이 비장의 무기가 될지 양날의 검이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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