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려고 했다. 아내도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그런데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산 베어스 좌완 이혜천(34)의 최근 몇 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1998년 전신 OB 데뷔 이래 꾸준히 팀의 왼손 마당쇠로 활약했고 2008년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인생투’를 보여주며 일본 야쿠르트로 진출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확실한 위력을 살리지 못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2년 간 특유의 구위까지 잃어버린 듯한 모습으로 팬들의 비난 집중 포화를 맞았다.
얼마 전만 해도 심각하게 은퇴를 결심했던 그는 현재 일본 미야자키 전지훈련에 참가해 야구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훈련 중이다. 김진욱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이혜천에 대해 “선수 본인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고 있다.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라며 배수진에서 살아남길 바랐다.

1998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2차 2라운드로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이혜천은 두산이 지난 24년 간 갖지 못했던 국내 좌완 한 시즌 10승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투수였다. 1999년 8승과 2001년 9승을 기록했고 2006년에는 한때 류현진(LA 다저스, 당시 한화)와 평균자책점 수위를 다퉜을 정도로 활약하며 8승 6패 1홀드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했다. 2007년 허리 수술로 쉰 것을 제외하면 보직에 상관없이 팀이 원하는 위치에 나서던 이혜천이었다.
2008시즌 후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일본 야쿠르트로 진출했으나 두 시즌 동안 뛰어난 활약상은 선보이지 못했던 이혜천. 그는 2010시즌이 끝난 후 1년 11억원의 계약 조건에 유턴했으나 지난 2시즌은 이혜천이나 팬들이나 서로 얼굴 붉힐 경기만이 가득했던 한 해였다. 2011시즌에는 손 골절상으로 일찌감치 시즌 아웃되며 1승 4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6.35에 그쳤고 지난해에도 1승 3패 7홀드 평균자책점 7.45로 주저앉았다.
개인 성적이 안 좋으면 가장 마음이 아픈 이는 팬도 아니고 선수 본인이다. 지난 2년 간 이혜천은 전력분석원이 지나가면 ‘난 어떻게 던져야 하나’라며 캐묻고 고개를 푹 숙이기 일쑤였다. 지난 시즌 초반 선배 김선우의 선발승을 날려버렸을 때는 의기소침한 모습에 오히려 김선우가 “혜천이한테 너무 비난 공세가 쏟아지지 않았으면 한다. 너무 미안해해서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라며 감싸기도 했다. ‘오버 페이 플레이어’라는 이미지는 더 큰 비난의 메아리로 반사되어 날아왔다.
“팔 각도도 시즌 중 여러 차례 수정하고 내가 가진 구종도 스스로 살펴보기도 했다. 못 던지고 싶은 투수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마음대로 안 되더라. 경기가 끝난 후 팬이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하고 치고 가거나 차가 망가져 있더라. 야구가 안 되는 날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나 싶었고. 그냥 지난 시즌 도중 그만둬버리고 싶었다. 아내도 ‘그렇게 힘들면 그만 둬’라며 내 결정에 맡기겠다고 하더라”.
그러나 선수 스스로의 마지막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대로 그만두면 결국 선수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화염 방사기’라는 이미지만 남긴 채 떠나게 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12년 전 선발-계투를 종횡무진 오가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좌완은 이제 배수진을 치고 훈련에 몰두 중이다.
팀에서도 이혜천이 최근 3년 간 가장 열성적인 캠프 집중도를 보여주는 데 대해 일단 점수를 주고 있다. 일단 이혜천에 대한 현재 팀의 기대치는 계투 추격조 및 원포인트 릴리프. “이대로 그만두면 그냥 실패한 선수가 된다. 올해가 마지막이고 안 되면 정말 끝이다”라며 강을 등진 이혜천의 2013시즌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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