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세계'(박정훈 감독, 21일 개봉)를 본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적어도 제일 먼저 감상을 언급할 배우는 황정민일 것이다. 코믹하면서도 살벌하게, 황정민의 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아찔하게 보는 이의 심장을 죄어온다. 하지만 그는 정작 "내가 잘했다기 보다는, 캐릭터 자체가 그렇다(팔딱거린다)"라며 겸손해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영화 '달콤한 인생'의 강렬한 백사장(조폭)의 캐릭터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자신감도 보였다.
"정재, (최)민식이 형, 저, 다들 각자 맡은 역할들에 정말 최선을 다해줬다고 생각해요. 내 역할은 누가 하든 튀는 역할이었거든요. 정재가 팔딱 거리는 민식이 형과 제 사이에서 정말 잘 해줬어요. 정말 그 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제가 알거든요. 그런 정재가 있기에 제가 있을 수 있는 거고요. 배우들의 정확한 삼각형 구도가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제 목표는 관객들의 머리 속에 정청(황정민 분)이 남아있더라도 자성(이정재 분)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게 만드는 거였죠. 그게 정청의 목표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 영화의 조연이니까 자성을 보이게 해야죠. 그런 점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신세계'는 대한민국 최대 범죄조직인 골드문에 잠입한 형사, 그리고 그를 둘러싼 경찰과 조직이라는 남자들 사이의 음모, 의리, 배신의 드라마를 그려낸 작품.

황정민은 "이 캐스팅이 화제가 될 지는 몰랐다"라고도 말하며 웃어보였다. 최민식, 이정재, 황정민의 조합이라니, 영화계가 떠들썩했지만 정작 본인들에게는 그저 '한 번 같이 모여 연기하자'란 즐거운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들과 함께한 호흡에 대해 "물 만난 고기처럼 편했다"라고 표현했다. 세 배우들의 센 '기'들이 촬영장에서 장난이 아니었을 것도 같다.
"그런 기들이 정말 좋은 기에요. '내꺼만 하자'란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의 연기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죠. 그것이 정말 즐거워요. 함께 연기하는 배우가 그 기가 없으면 미쳐요. 그런데 다 같이 기세 등등 어울려서 휘몰아쳐 큰 기를 만드니까 미치고 환장하지. 누구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자기 포지션을 꿰차고 정삼각형을 너무 정확히 만드니까 앙상블을 이루는 거죠. 자기 것만 하지않고 상대방의 빈 구석들도 채워주니 그것도 고마운 거고. 그러니까 관객들은 영화 보는 맛이 날 것이고요. 촬영할 때 조차도 시간이 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너무 좋았습니다. 진짜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또 영화 속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인 제 4의 주연 배우 박성웅에 대해서는 "되게 열심히하는 친구에요. 영특한 친구라 자기의 것을 계속 찾아 가더라고요"라며 칭찬을 보냈다.
이정재에게 "브라더~"라 애교섞인(?) 욕을 하며 친근하게 구는 황정민의 모습과 이를 틱틱대며 받아치는 이정재의 모습은 흡사 남자들의 케미가 그렇듯, 연인 관계같다는 반응도 많다. 왜 정청은 자성을 그렇게 사랑하는 걸까? 궁금증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황정민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관객에게 남겨두자고 했어요. 일일이 관객들에게 모든 것과 이유를 설명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영화에서 정청이 자성에게 갖는 애정의 바탕은 잘 드러나요. 왜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잖아요. 자성에게는 이 바닥(조직 세계)에서 굴러먹지 않은 분명한 포스가 있는 것도 한 이유일 거에요. 공부 좀 못하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친구를 동경할 수 있는 것처럼요"라는 대답을 들려줬다.
정청이란 인물은 화교 출신으로 조직의 2인자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 순박해보이면서도 한 순간 눈빛에서 뿜어나오는 강한 독기가 매섭다. 또 유난히 찰진 욕으로 구성된 대사도 정청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한 몫한다. 누군가는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대사라고 할지언정, 입에 착 달라붙는 애교스럽고도 장난기넘치는 이 대사들은 묵직한 이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황정민 스스로도 사실 그런 부분에 고민이 많았다고.
"욕을 잘 못하는 사람이 욕을 하면 어색하거든요. 거부감이 들 수 있는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어요. 물론 쉽지 않았죠. 맛깔스러워야 했고, 어떤 면에서는 되게 정겹고 코믹하게 보여야했거든요. 그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죠."
절대 쉬워보이지 않는 정청이란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황정민은 "대본 자체에 있는 위트를 더욱 부각시켰어요. 영화가 딥(deep)한 게 있으니 의외성에서 줄 수 있는 코믹함을 보여주자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 속 정청에게는 여러 애드리브가 녹아있다"라고 덧붙였다.

"처음에 캐릭터를 분석할 때 여수 어촌 화교 출신에다가 한국 사람도 아니고 중국 사람도 아닌 이 사람이 골드문 그룹의 2인자까지 갔다는 것은 얼마나 독하다는 건가, 라고 생각했죠. 그런 바탕이 있는 사람인데, 그것만 보여주면 재미없잖아요. 독하지만 다양한 색깔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갈래길을 갖고 있는 사람. 카멜레온 같은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독함이 있되 동료들이 나를 따르게 마드는 형으로서의 느낌도 있어야 하고, 또 나사가 풀린 듯 하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있고. 그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정청이에요. 정청이 그 자리까지 가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들을 넘겼겠어요. 농짓거리를 좋아하고 허풍도 있으면서도 복잡다단한 인물이죠. 그래서 되게 재미있었어요."
영화의 회심 장면은 당연 정청이 적들과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벌이는 엘리베이터 신이다. 본인 스스로도 그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로 꼽으며 "원래 그렇게 난잡한 장면은 아니었어요. 액션에 합이 다 있었고, 리허설 때는 멋있었어요. 그런데 슛 들어가니 바닥의 피에 발들이 미끄러지고 합이 다 엉켜서 난리가 났어요. 그게 오히려 약이 된 장면이었죠. 원 신 원 커트로 찍었는데, 나중에 우리도 키득키득 웃고 만족하며 '이런 액션신은 처음이다'라고 했어요"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벌써부터 누군가는 영화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을 떠올리지만, 그는 '아임 오케이(I'm OK)'라고 했다. "캐릭터가 비슷해서 안해? 그건 바보같은 생각이죠. 그리고 백사장과 똑같이 연기하더라도 백사장과 똑같을 수는 없어요. 왜냐, 작품과 캐릭터가 전혀 다르니까요. 그리고 또 다른 정청으로서의 모습은 보여줄 거라는 스스로의 자신감도 물론 있었고요. 하지만 나름 백사장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고, 또는 다른 인물이라 고 봐주셔도 좋습니다. 전부 관객들의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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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