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14번째 장편 신작이자 제 6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첫 공개되며 홍상수 월드 속 '찌질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다시한 번 보여줬다.
19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베일을 벗고 첫 국내 관객들을 만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캐나다로 엄마를 떠나 보낸 여대생 해원(정은채)이 겪게 되는 슬프고, 때로는 기뻤던 며칠 간의 일들을 일기체 형식 속에 담은 작품. 영화과 학생으로 감독이자 교수인 성준(이선균)을 사랑하는 해원(정은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벌어진다.
해원을 두고 남편과 이혼 후 아들이 있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해원 엄마(김자옥)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남들 몰래 비밀 연애를 하지만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구설수에 올라 비난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해원과 성준과의 관계가 그려지며 여러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 속에는 해원에게 첫 눈에 반해 해원에게 과도한 애정을 표현하는 미국대학 교수 김의성, 역시 해원에게 첫 눈에 호감을 느끼고 카페에서 은근히 작업을 거는 수염 기른 남자 류덕환, 해원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프랑스 여배우 서촌 관광객 제인 버킨, 해원과 성준이 자주 오르던 남한산성을 찾는 등장객 기주봉 등이 배우로 등장한다. 아, 7년째 연애 중인 불륜 커플 유준상과 예지원도 있다. 이들은 함께 홍상수 감독의 전작 '하하하'에 출연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안긴 바 있다.
'홍상수 월드'라는 말이 있듯이 홍상수 감독의 이상한 나라에서는 처음 본 남자가 처음 본 여자에게 거리낌없이 다가가는 것은 물론이고, 젊은 여주인공은 산에서 몇 번 만난 아저씨에게 다짜고짜 술을 한 잔 달라고 청한다. 남자들은 끊덕지게 매력적인 여자를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수를 쓰고, 대사의 흐름은 때론 엉뚱하기 짝이없다.
앨리스에게 방향을 안내하는 시계토끼가 있듯이 누군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고 알려주는 친절한 메신저가 있다면 좋으련만, 홍상수 월드에서는 관객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만 한다. 특히 해원의 일기를 통해 풀려지는 이번 이야기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다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관통하는, 홍상수표 '찌질한 남자'는 어김없이 드러나 그나마 관객들에게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아내와 자식이 있지만 해원을 사랑하는 성준이 다른 사람에게 해원과의 관계를 걸릴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얄미우면서도 한심하고 코믹하다. 해원에게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자 뒤에 놓인 카메라를 통해 살짝 속옷을 보인 채 엉엉 우는 성준의 모습은 찌질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또 술자리에서 한 학생이 "왜 감독님 영화에서 지식인들은 좀 그런데, 교수를 하냐?"라고 도발적으로 묻는 장면은 홍상수 감독 스스로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웃음을 안긴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보는 사람들을 여행하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하하'는 통영, '다른 나라에서'는 모항, '북촌방향'으로 북촌을 조명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남한산성과 고즈넉한 서촌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대체 뭘 느껴야 할 지 모르는 평범한 관객들이라면, 이런 장소가 주는 감수성이라도 듬뿍 받길 바란다.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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