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팀은 기묘한 동침이 벌어지는 곳이다. 지금은 사상 첫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우승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리는 동료지만 앞으로 한 달 뒤면 각 팀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야 할 적이다.
언젠가는 적으로 돌아설 사이지만 대표팀은 배움의 장이자 나눔의 장이다. 한 배를 탄 동료이기에 서로 가르쳐주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 후배들은 국가대표에 합류해 선배들의 그림자를 따르며 한 뼘씩 성장한다. 후배는 시즌 때 경쟁자였던 선배를 곁눈질로 보며 기량을 향상시키고 때로는 직접 찾아가 비법을 전수받기도 한다.
대표팀에 여러 번 선발됐던 김현수(25,두산)는 "대표팀 선배님들을 보면 훈련 하나에도 남들과 다르다는게 느껴진다. 그걸 보면서 많이 배운다"고 말한다. 선수들이 국가대표 선발을 바라는 또 다른 이유는 기량발전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표팀 포수 강민호(28,롯데)와 우완 윤석민(27,KIA). 현재 대표팀 전력의 핵심인 이들 둘은 시즌에 돌입하면 적이 된다. 롯데와 KIA는 올 시즌 상위권 순위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은 배터리로 찰떡궁합을 벌써부터 맞추고 있다. 윤석민의 불펜피칭을 받는 강민호는 후배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 준다. 윤석민은 그에 맞춰 조금씩 폼을 수정해가며 컨디션을 순조롭게 끌어 올리고 있다.
그렇지만 서로 작별해 다시 적으로 만날 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20일 도류구장에서 만난 강민호는 전날 경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강민호는 선발로 출전, 포수마스크를 써 선발투수 윤석민과 호흡을 맞췄다.
문제는 볼 배합. 강민호는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윤석민에게 커브를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석민은 계속 거절했다고 한다. "석민이가 자기는 원래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커브를 잘 안 던진다면서 내 사인을 거부했다"는 것이 강민호의 설명이다.
그 타석을 넘기고 강민호는 윤석민에게 "정말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커브를 안 던지냐"고 물었다. 서로 다른 팀이기에 윤석민의 볼배합을 강민호가 속속 알 수는 없다. 잘 하면 정규시즌에 상대할 때 참고할 수도 있는 사항이다.
거기에 그냥 넘어갈 윤석민이 아니다. "형이랑 상대할 때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커브 던질건데요?" 강민호는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강민호와 윤석민의 상대전적은 6타수 2안타, 타율 3할3푼3리 였다. 안타 2개는 모두 2루타, 그리고 2타점까지 올린 강민호다. 대표팀에서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 본 뒤 올해 정규시즌 상대전적은 어떻게 될까. 누구의 수 싸움이 앞서냐에 따라 판가름 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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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류(타이완)=지형준 기자,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