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는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리한 카운트에서 볼넷을 뽑아냈고 범타로 물러났으나 모두 7구 이상 끌고 간 끈질긴 대결. 지난해 두산 타선에서 찾아보기 힘든 부분이었다. ‘두목곰’ 김동주(37, 두산 베어스)는 올해 자신의 첫 실전에서 적어도 선구안만큼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김동주는 지난 21일 일본 미야자키 기요다케 구장에서 벌어진 청백전에서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해 2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2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김동주는 유희관에게 2루 땅볼로 물러났으며 4회에는 김명성에게 볼넷, 6회에는 박민석에게 투수 앞 땅볼로 일축당했다. 경기 성적만 따지면 기대 이하의 기록이다.
그러나 경기 내용을 파고들면 못한 것만도 아니다. 첫 타석에서 유희관에게 일찌감치 볼카운트 0-2로 불리하게 몰린 김동주는 볼 두 개를 골라낸 뒤 7구 째를 받아쳤으나 2루수 최주환 앞으로 향했다. 김명성으로부터 얻은 볼넷은 0-2에서 볼 네 개를 골라낸 선구안이 돋보였다.

박민석에게 당한 투수 앞 땅볼도 풀카운트 후 6구 째 파울커트 뒤 7구 째를 때려낸 것이 투수 앞으로 흘러갔다. 대체로 연습경기에서 주전급 선수들은 성적을 내는 것보다 페이스를 맞추는 데 집중하게 마련. 투수의 회복도에 비해 타자들의 배트 스피드 회복 속도가 늦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세 투수로부터 김동주가 본 공은 모두 20개였다. 아직 1군에서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투수들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2군에서 제구력이 나쁘다는 평을 받은 선수들은 아니다. 지난해 두산 타선의 경기력을 보면 삼진을 피하려다 2~3구 내에 성급하게 범타로 물러나는 모습도 많았다. 이를 감안하면 김동주가 인내심 있게 자기 공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1998년 전신 OB에 입단한 이래 김동주는 줄곧 두산의 4번 타순을 지켰던 중심 타자. 그러나 지난 시즌 66경기 2할9푼1리 2홈런 27타점의 성적만을 남긴 채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도 나서지 못했다. 장타율 3할4푼1리 출루율 3할3푼9리로 세부 스탯 자체가 김동주 답지 않았다.
시즌 후반기 김동주가 2군에 있는 동안 만년 유망주였던 윤석민은 팀의 4번 타자로 후반기에만 48경기 3할1푼9리 6홈런 25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무성한 소문으로 인해 팀 내 입지까지 급격히 좁아졌으며 여기에 시즌 후에는 홍성흔까지 FA로 재입성했다. 선수로서 생존 경쟁의 장에 들어선 김동주다.
그만큼 김동주는 전지훈련 출발 전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며 훈련에 집중했다. 잠실구장 훈련에서 셔틀런 왕복 달리기까지 소화했고 현재도 단체 훈련에서 배제되는 일 없이 뛰고 있다. 황병일 수석코치는 “타 팀에서 소문으로 듣던 김동주와는 완전히 다르다. 확실한 목표 의식 속에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적어도 선구안 만큼은 현재 야수 경쟁자들 중 김동주가 훨씬 우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선구안을 바탕으로 상대 투수를 힘들게 하는 능력은 지난해 두산 타자들이 대체로 야구 관계자들로부터 지적받았던 부분이다. 또한 선수 생활 내내 김동주는 가장 큰 잠실구장을 안방으로 쓰며 통산 200홈런-1000타점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타자이며 2008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 국가대표팀의 단골 4번 타자로 나서던 거성이다.(272홈런 1088타점) 그만큼 재기를 향한 자존심이 어마어마하다.
“등번호처럼 18년을 명예롭게 뛰고 싶다. 그리고 은퇴 전까지 꼭 팀 우승의 달콤한 맛을 후배들에게 맛보게 해주고 이룰 만큼 이뤘다고 생각했을 때 쿨하게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다”. 리그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오른손 타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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