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세 명의 '국민 스타'를 만들었다. 1회와 2회 대회에서 대표팀을 4강, 결승으로 이끌었던 '국민감독' 김인식(66) 기술위원장, 위기 때마다 결정적인 홈런을 터트렸던 '국민 타자' 이승엽(37), 그리고 환상적인 수비로 '국민 우익수'라는 호칭을 받은 이진영(32)이 그 주인공이다.
김 위원장은 이제 기술위원장으로 WBC 대표팀을 뒤에서 돕고 있고 이승엽과 이진영은 다시 대표팀에 선발돼 대표팀의 그랜드슬램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3일 대표팀의 전지훈련지인 도류구장을 찾은 김 위원장은 인사를 하러 온 이진영을 보더니 "매사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진영이 스파이크를 신은 채 야구장 복도를 다니던 것을 보고 행여나 발목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이진영이 국민 우익수로 떠오른 건 자신의 실수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2006년 일본과의 1라운드 예선에서 한국은 4회 0-2로 뒤진 상황에서 2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타석에는 니시오카가 들어섰고 김 위원장은 전력분석 자료를 종합해 외야수들을 중견수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내가 외야수를 중견수 쪽으로 움직이게 했는데 마침 니시오카가 그 쪽(짧은 우익선상)으로 치더라. 진영이가 막 뛰어가는데 공이 떨어지는 순간에 난 보지도 못했다. 눈을 그냥 질끈 감아 버렸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진영은 그 공을 잡았는데 만약 뒤로 빠졌으면 승부 자체가 기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어 이승엽과의 비화도 소개했다. 이진영이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줬던 바로 그 경기 직전 이승엽은 김 위원장을 찾아가 "감독님, 저 오늘 홈런 치면 얼마 주실거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너가 쳐야 치는거지. 나중에 홈런 치고나서 그런 소리를 해라"고 한 마디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승엽은 정말 그날 경기에서 홈런을 쳤다. 1-2로 끌려가던 8회 1사 1루에서 이시이를 상대로 도쿄돔 스탠드에 꽂아 버리는 역전 결승 투런포를 작렬시킨 것. 이승엽의 홈런으로 한국은 일본을 꺾고 전설의 첫 페이지를 썼다.
일본을 3-2로 꺾은 뒤 김 위원장은 승장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따라 이승엽이 김 위원장 주위를 맴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쑥 "감독님, 경기 전에 약속하셨는데 언제 주실거냐"고 은근히 물어와 결국 지갑에서 200달러를 꺼내 줬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그 장면을 박찬호가 봤다고 한다. 박찬호는 9회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공 7개로 깔끔하게 막아 한국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김 위원장은 "아마 찬호가 수훈선수한테 금일봉을 주는 거라고 착각했나 보다. 그래서 찬호도 와서 '감독님 저는 돈 왜 안주시냐'고 물어 보더라. 그래서 '너랑은 약속 안 해서 못 준다. 승엽이랑은 약속한거라 준거다'라고 말하고 돌려 보냈다"고 껄껄 웃었다.
한화 감독이었던 김 감독의 당시 연봉은 2억원. 김 감독은 "승엽이는 그때 내 연봉의 15배를 받고 찬호는 한 30배 받았을거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가 고작 200달러 갖고 실랑이하는거 보면서 '역시 돈 싫어하는 사람 없구나 싶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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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류(타이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