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참 모를 일입니다. 2000년대 들어 한국프로야구 최강자로 군림한 삼성 라이온즈와 약체로 하위권을 헤매고 있는 LG 트윈스가 한 순간에 운명이 달라질 수 있을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삼성이 최강자로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핵심 노릇을 하고 있는 최고 마무리 투수 오승환(31)이 LG 유니폼을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는 오승환이 단국대학교 4학년 시절(2004년)입니다.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던 시기에 삼성과 LG에 지명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삼성보다 전년도 성적에서 뒤처져 신인드래프트에서 앞순위였던 LG에서 오승환을 지명했다면 현재의 삼성 오승환은 없었습니다.
LG도 지명하기 전에 오승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올 시즌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로 부임한 왕년의 ‘좌완 스페셜리스트’ 권영호(59) 전 영남대 감독은 “LG가 내말을 들었으면 오승환은 LG에 입단했을 것이다. 신인지명이 있기전 대학경기에서 LG 코칭스태프를 만났는데 오승환에 대해 묻더라. 그래서 무조건 잡으라고 했다. 내가 대표팀에 오승환을 데리고 국제대회에 나갔는데 공이 정말 좋았다. 손승락(넥센)과 둘이 주축이었다. 직구 구위는 오승환이 최고였다”면서 “그런데 LG에서는 오승환이 수술 전력이 있다는 것을 듣고는 신경을 쓰지 않더라. 반면 삼성 스카우트는 내게 ‘오승환 어떠냐’고 나중에 물어와서 ‘정말 좋다’고 추천했다. 그래서 오승환이 후순위인 삼성 유니폼을 압게 된 것”이라고 예전 비화를 얘기했습니다.

오승환은 아마시절 2번에 걸쳐서 팔꿈치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습니다. 그 탓에 LG를 비롯한 앞순위 팀들은 오승환을 건너뛴 것입니다. 마치 ‘괴물’ 류현진(LA 다저스)이 고교시절 수술 전력이 있어 고향팀(SK)과 앞순위 롯데를 지나가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고 최고 투수로 우뚝 자리잡은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해서 ‘굴러들어온 복덩어리’ 오승환을 잡은 삼성은 승승장구했습니다. 2005년, 2006년 그리고 2011년과 2012년 등 한국시리즈 정상을 4번 올라 2000년대 최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여기에는 오승환의 힘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오승환이 최고의 소방수로서 맹활약하며 뒷문을 튼튼히 지킨 덕에 삼성의 정상등극이 가능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들이 수술 전력이 있어 피한 오승환에 대해 모험을 건 삼성이 대박을 터트린셈이죠. 때로는 위험한 투자가 엄청난 효과를 거두는게 세상사인가 봅니다.
이에 반해 '안전모드'를 택한 LG는 최근 10년간 포스트시즌에도 나가지 못하며 암흑기를 보내고 있으니 만일 오승환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합니다. 전체 전력이 삼성에는 못미치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해 번번이 무너졌던 LG에게 최고 소방수 오승환이 버티고 있었다면 우승은 아니더라도 4강권에는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매번 마무리 투수가 없어 고전했던 LG에게는 오승환이야말로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 때 LG 코칭스태프가 권영호 수석의 조언을 듣고 오승환을 잡았다면 프로야구는 어떤 역사가 쓰져졌을까 생각해봅니다.
OSEN 스포츠국장 sun@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