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이 화제다. KBS 2TV '아이리스 II', MBC '7급 공무원'과 함께 물러설 수 없는 격전을 펼친 끝에 3회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순항 중이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단연 손에 꼽히는 매력은 남녀주연으로 나선 조인성과 송혜교의 연기와 비주얼이다. 이 선남선녀는 클로즈업 한 컷으로 마치 잘 만진 CF의 한 장면 혹은 화보 한 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어느덧 데뷔 15년을 넘긴 내공으로 농익은 연기력을 뽐낸다. 공교롭게도 나란히 브라운관 공백이 꽤 길었던 두 사람은 오랜만의 드라마로 자신들이 왜 톱스타인지, 왜 제작자들이 캐스팅 1순위로 꼽는 톱배우인지를 여실히 증명해내고 있다.
가짜 오빠 행세를 하는 남자가 눈이 안 보이는 여동생에게 그 정체를 들킬까 조마조마한 스토리가 이어지며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가운데, 각각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두 배우에게서 특징이 발견된다. 거짓을 말하는 남자의 입과 멀어버린 여자의 두 눈은 다른 그 어떤 얼굴 부위나 신체, 혹은 표정 연기 없이도 그 자체만으로 흡인력을 발휘한다. 조인성은 벌어진 입술, 그리고 때론 잔뜩 힘이 들어간 입꼬리로 '오수'에 빙의하고 송혜교는 주로 한 곳을 응시하다가도 순간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는 눈동자로 '오영'을 표현하고 있다.
조인성의 입, 눈빛과 손길에 채 담지 못한 무언가

방송 5회 동안 조인성의 1초 눈빛과 섬세한 손 연기가 네티즌의 폭풍 관심을 받았다. 이미 첫 방송 전부터 예고를 통해 공개됐던 이른바 '1초 눈빛'은 그 안에 무수한 의미를 내포하며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 오영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절제된 손 연기도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렇듯 눈빛과 손짓으로도 마치 말을 하는 듯한 조인성의 '오수' 연기에서 새롭게 주목해야 할 디테일을 추가하자면 '입'이다. 70억 원이 넘는 빚에 떠밀려 시작된 상속녀 오영(송혜교 분)의 오빠 행세, 그의 입이 거짓말을 내뱉은 순간 두 남녀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거짓을 말하는 입술, 그 간사하고도 절절한 욕망의 출구는 다양한 형태로 오수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조인성은 입술을 반쯤 벌리거나 입꼬리를 올려 지긋한 미소를 만들거나, 때로는 입술에 잔뜩 힘을 집어넣고 부자연스러운 거짓말을 쏟기도 한다. 지난 6회에서는 첫사랑 희주(경수진 분)의 기일을 잊었다가 뒤늦게 찾아간 무덤에서 무철(김태우 분)을 만나고 분노의 격투를 벌인 후 피 터진 입술을 파르르 떨며 통곡하기도 했다.
특히 팬들이라면 알다시피 조인성은 전작들인 영화 '비열한 거리'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등을 통해서도 특히 입(입술)을 사용한 연기를 자주 보여줬다. 입술산이 또렷하고 마치 립스틱이라도 바른 듯 유독 붉은 색의 그것은 조인성이 얼굴을 사용할 수 있는 연기 중 많은 부분을 담당한다. 눈빛에만 감정이 담기는 게 아니라 입술의 상태나 모양으로도 속내를 표현할 수 있는 스킬이다.
송혜교의 눈, 먼 눈동자로 말하는 수만 가지
이번 작품에서 송혜교 연기의 압권은 역시 시각장애를 표현하는 데 있다. 극중 오영의 눈은 깜깜하게 멀어있는 설정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정안인(시각장애가 없는 사람들)보다 한층 풍부한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왕비서(배종옥 분)를 대할 때는 말투뿐 아니라 눈빛마저 칼날처럼 날카롭다. 하지만 오수를 향한 의심을 거두고 진짜 오빠라 믿게 된 순간부터 오수와 함께 있는 그의 눈빛은 그토록 애잔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오빠, 엄마와 함께 갔던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는 오수의 모습을 느끼곤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이끌려 강물로 걸어 들어가던 그의 눈에는 환희가 차올랐다. 천천히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던 눈동자는 송혜교의 연기 내공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를 가늠케 했다.
송혜교는 대한민국 많은 톱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최상의 미녀로 꼽히지만 단지 예쁘고 아름다운 눈매를 가졌다고 해서 최고의 배우가 될 수는 없는 법. 시각장애인의 몸으로 거리에서 사람에 부딪힐 때, 넘어질 때의 그 불안한 눈빛이나 죽음의 공포와 고독의 늪에서 한없이 불안해질 때 나타나는 그 복잡한 눈빛, 또 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얻은 애틋하고도 사랑스러운 눈빛은 시청자들의 가슴까지 저미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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