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대표팀 투수 구원해준 진흙, '러빙 머드'의 비밀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3.02.26 07: 02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레나 블랙번이라는 인물은 1938년 델라웨이 강에서 '노다지'를 발견한다. 그가 발견했던 것은 금광과 같이 가치 있는 게 아니라 새까만 진흙이었다.
진흙으로 돈을 번다고? 블랙번이 갖고 있던 고민은 야구공의 광택을 효과적으로 줄일 물질을 찾는 것이었다. 새 야구공은 광택을 갖고 있는데 이는 타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됐기에 광택을 줄일 물질이 필요했다. 여러 물질을 시험해 봤던 블랙번은 이 진흙을 사용해 보고 자신이 찾던 물질임을 깨닫는다.
야구공의 광택을 효과적으로 없애주는 데다가 마찰까지 높여줘 공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걸 방지해주기까지 했다. 그는 이 흙을 캐내 가공한 뒤 아메리칸리그에 공급을 시작했고 1950년대에는 내셔널리그까지 공급했다. 현재도 메이저리그에서 쓰이는 이 흙의 상품명은 레나 블랙번 베이스볼 러빙 머드(Lena Blackburne Baseball Rubbing Mud)다.

이 흙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투수들에겐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롤링스 사에서 제조되는 WBC 공인구는 국내 공인구보다 좀 더 크고 실밥이 덜 도드라져 있다. 결정적으로 국내 공인구보다 미끄러워 투수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러빙 머드를 발라 사용하는 공이니 그냥 던지면 미끄러운 건 당연한 일.
훈련 초기에는 공이 미끄럽다는 선수들의 호소가 많았으나 KBO가 미국에서 러빙 머드를 공수해와 공인구에 바르면서 그러한 불만은 많이 사라졌다. 900g에 75달러, 우리 돈으로 약 8만원 정도인데 KBO는 훈련용 공인구에 필요한 정도만 조금 얻어왔다고 한다.
선수에 따라 다르지만 대표팀 투수들은 러빙 머드와 함께 WBC 공인구에 적응하고 있다. 좌완 박희수는 "원래 공을 크게 가리지 않는 편인데 처음 공인구를 만졌을 때 상당히 미끄러워서 당황했다"면서 "그런데 머드를 바른 공을 던져보니 오히려 한국 공인구보다 손에 잘 감기는 느낌"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또 다른 좌완 장원준은 "우리나라 공인구 만큼은 아니다. 머드를 발라도 아직 좀 어색하긴 하다. 그렇지만 확실히 바른 것과 안 바른 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다만 변화구 구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투수들도 여전히 있다. 송승준과 노경은은 "커브가 잘 안 감긴다"고 말한다.
왜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이 귀한 진흙을 볼 수 없을까. 국내 야구에서는 이 흙을 사용할 수 없다. 규정 상 야구공에 어떠한 이물질도 바를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신 경기시작 전 구심이 새 공을 건네받아 손으로 문질러 광택을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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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류=지형준 기자,jpnews@osen.co.kr. 러빙 머드를 바르기 전과 후. 오른쪽 검은 통에 담긴 것이 러빙 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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