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좋았던 한 해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4승이 줄어들었고 평균자책점도 0.65 상승했다. 그러나 20회의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는 물론 194이닝을 소화하며 이닝이터 에이스로 확실한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팀 융화력이 최상급이라는 점. 한국에서 3번째 시즌을 맞는 두산 베어스의 효자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32)가 세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자신의 각오와 야구관을 밝혔다.
애리조나-텍사스 시절 203cm 장신의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으나 확실한 두각은 나타내지 못했던 니퍼트는 2010시즌 후 논텐더 자유계약 선수가 된 뒤 2011년 두산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2011시즌 니퍼트는 15승 6패 평균자책점 2.55의 뛰어난 활약상을 선보이며 그해 최고 외국인 투수로 우뚝 섰다.

지난해 니퍼트는 11승 10패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하며 두산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공헌했다. 승리 수가 줄어들었고 패배가 많아졌을 뿐 더러 평균자책점도 상승하며 약간 기세가 꺾인 것도 사실. 그러나 니퍼트는 194이닝으로 브랜든 나이트(넥센, 208⅔이닝)에 이어 전체 2위의 이닝 소화 능력을 보여줬으며 20번의 퀄리티스타트(전체 3위)를 기록했다. 한 이닝에 집중타를 맞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나 경기 당 평균 6⅔이닝 씩을 소화하며 선발투수로서 최소한의 미덕에 충실했다.
게다가 국내 선수들과도 허물없이 잘 지내며 어느덧 팀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동료로 자리를 굳혔다. 두산이 니퍼트와 3년 째 함께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난 1일 미국에서 전지훈련지인 일본 미야자키로 합류한 니퍼트는 현재 전지훈련 막판 라이브 피칭 및 불펜 투구로 최종 점검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에게 한국 무대 2년차 시즌 소감을 묻자 “표면적인 기록은 안 좋아졌으나 이닝 수가 늘었다는 점은 만족스러웠다. 그러나”라고 운을 뗀 니퍼트는 지난해 10월 12일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계투로 자원등판했다가 아웃카운트 없이 4피안타 3실점으로 동점을 내준 기억 때문인지 표정을 찡그렸다. 당시 10월 8일 1차전 선발로 나서 6이닝 3실점을 기록했던 니퍼트는 한 번만 더 패하면 끝나는 만큼 팀에 도움을 주고자 계투 등판을 자청했으나 결과는 그와 선수단, 팬들의 바람과 반대로 흘러갔다.

“팀의 마지막 경기에서 내가 부진한 모습을 보여 허무하게 한 해가 끝나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날 경기의 부진이 가슴 아팠다. 지난해를 내가 좋은 기억으로 돌아볼 수 없는 이유다”.
첫 해 후반기부터 변신을 꾀한 뒤 지금까지 니퍼트가 생각하고 있는 투구론은 최대한 빠르게 범타를 유도하며 이닝을 길게 가져가는 방법. 실제로 첫 해 187이닝 동안 15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던 니퍼트는 지난해 194이닝 126탈삼진의 기록을 남겼다. 그 전략을 고수할 것인지 대해 묻자 니퍼트는 첫 해 첫 두 달 간 느꼈던 점을 언급하며 자신이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게 된 계기에 대해 말했다.
“지금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경기 당 5이닝을 넘기는 것이 힘들었다. 투구수가 많아져서 갓 5이닝을 넘겼는데 투구수가 100개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최대한 많은 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낮게 제구하며 방망이를 끌어내고 선발로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것이 뒤를 잇는 동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팀의 장기 레이스에 있어서도 더 도움이 되는 일 아닐까. 낮고 안정적으로 제구하면서 좀 더 공격적으로 던져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한화 에이스로서 22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고도 9승으로 아쉬움을 샀던 류현진(LA 다저스) 정도는 아니지만 니퍼트도 지난해 운이 없던 투수 중 한 명이다. 완투패도 한 차례 있었고 8이닝 2실점, 7이닝 2실점을 기록하고도 패하거나 7이닝 무실점에도 노 디시전으로 마운드를 내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8월 7일 한화전에서 승리한 후 니퍼트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한때는 자신도 답답했던지 “의식은 안 하려고 하는데 가끔은 ‘뭐 이런 시즌이 다 있나’ 싶다”라며 고개를 흔들던 니퍼트다.
“나는 승리에 크게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퀄리티스타트도 내가 어느 해에 몇 개나 했는지 사실 잘 모른다. 초반에 점수를 주더라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이닝을 끌고 가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운이 좋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나는 5이닝을 겨우 채우고 난타당해 거둔 선발승보다는 혹여 패하더라도 7이닝 이상 많이 던지고 1실점 하는 편이 팀의 장기 레이스로 봤을 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니퍼트의 올 시즌 목표는 몇 승이 아니라 꾸준한 로테이션 소화와 최대한 많은 이닝이었다. 오는 4일 청백전에서 전지훈련 처음이자 마지막 실전 등판이 예정된 니퍼트는 “아직은 좀 더 올라와야 하는 시기다. 올해 공격적인 투구를 통해 로테이션을 개근하겠다”라며 자신의 목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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