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경우의 수' 덫에 걸렸다, 야구 상식은 깨진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3.03.04 06: 02

한 점차로 앞선 8회 한국의 공격에서 선두타자가 출루했다. 단 1점만 더 뽑으면 뒷문에 대기하고 있는 정대현과 오승환이 있기 때문에 승리 확률은 대폭 높아진다. 타순에 따라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이 상황에서는 번트를 대 한 점을 뽑는 야구가 정석이다.
하지만 남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 예선에서 한국은 이제까지의 야구 상식과는 다른 경기를 펼쳐야 할 처지에 놓였다. 2일 네덜란드전에서 0-5로 충격패를 당한 한국은 조별예선 통과를 위해 남은 경기에서 2승을 거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여기서도 경우의 수가 등장한다. 축구에서는 단순히 득실만 따져도 되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하지만 이번 대회는 좀 더 복잡하다. 승률이 같을 경우 득실에 따라 결정되고, 이것도 일치할 경우 자책점이 적은 쪽이 유리하다. 만약 여기까지 일치하면 팀 타율로 가리고 마지막에는 동전 던지기로 결정한다.

한국 대만 네덜란드가 모두 2승 1패가 될 경우 세 팀 간 TQB(Team Quality Balance)=(득점/공격이닝)-(실점/수비이닝)를 따졌을 때 2위 안에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또 대만이 3승을 거두고 한국 네덜란드 호주가 모두 1승 2패가 되서 2위를 가려야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 다득점이 필요한 상황이다.
호주가 3패로 조 최하위가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한국은 대만과의 경기에서 6점 차 이상으로 승리를 거둬야만 조별라운드 통과가 가능하다. 정해진 이닝 안에 더 많은 점수를 내는 쪽이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야구라는 종목의 본질, 그러나 한국은 경우의 수라는 덫에 빠지며 점수 차까지 고려해가며 승리해야 한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야구에는 흔히 통용되는 상식이 있다. 하지만 대만전에서 한국은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6점이라는 점수차를 벌려야 한다. 야구에서 6점은 결코 적은 점수가 아니다. 자연히 다득점을 노리기 위해 번트와 같은 작전은 경기 초반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점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된다. 투수진 소모가 그만큼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것도 일단 4일 호주전에서 승리를 거둬야 의미가 있는 것. 만약 호주에게 지면 한국은 남은 경기 결과와는 관계없이 탈락이 확정된다. 호주를 상대로도 최대한 점수차를 많이 벌려야 한다. 만약 한국이 호주에 이기고 대만에 져 1승 2패가 된다 하더라도 호주가 네덜란드를 잡아 준다면 진출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 때를 위해서라도 타선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문제는 대량득점에 대한 압박감으로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쫓길 수 있다는 점. 경기 초반 득점이 나오지 않으면 자칫 조급해져 더욱 경기가 꼬일 가능성도 있다.
결국 네덜란드전 패배가 이 모든 상황을 초래했다. 그나마 정대현-오승환이 위기에서 최소실점으로 호투했기에 절망적인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다. 분명 어려운 상황에 처한 대표팀이지만 아직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 있다. 그게 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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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대만)=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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