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센 펀치] 2% 부족한 드라마들, 뭡니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3.04 08: 30

‘본방송까지 이제 3일. 작가가 언제 대본을 줄지 몰라 배우와 스태프들은 마냥 스탠바이중. 매일 같이 쪽대본을 외워야 하는 데다 개인시간도 없어진 배우들은 한껏 신경이 곤두섰다. 아, 대본 나오면 장소섭외 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지...’
소설이 아니라 실제 국내 드라마 현장 스태프의 한 서린 푸념이다. 지금도 어느 촬영 현장에서건 벌어지는 상황이고 제작진의 변치 않는 걱정거리다. SBS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 첫 회에서 마지막 회까지 몇 시간을 앞두고 결말 부분 촬영을 마치고 비디오테이프를 배달, 방송 펑크를 면하는 장면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연출된 것이 아닌 실제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현실이다.
3일 만에 드라마 한 편을 완성해야 하는 생방송이나 다름없는 드라마 제작현실은 배우와 스태프들의 피를 말린다. 이는 곧 극의 완성도로 이어지고 결국 시청자들은 2% 부족한 드라마를 보게 된다.

수많은 드라마의 제작이 생방송처럼 돌아가다 보니 그렇지 않은 드라마가 주목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극본이 미리 나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대사와 내용을 숙지한 후 촬영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드라마들이 박수를 받는 것. 노희경 작가의 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김수현 작가의 JTBC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는 반쯤 ‘사전제작’돼 시작한 드라마다.
‘무자식 상팔자’ 관계자는 “김수현 작가가 대본을 미리미리 줘서 배우들이 매회 거의 분석하는 수준으로 대본을 본다. 그래서 몇몇 배우들은 오히려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시간이 있다 보니 캐릭터를 완전히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있기에 ‘무자식 상팔자’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도 높은 캐릭터와 빈틈 없는 스토리 전개로 무장,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으며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배우들을 비롯해 방송가에서는 드라마 사전제작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방송 관계자는 생방송 촬영이 불가피한 건 시청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수용해 드라마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생방송 수준으로 드라마를 제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시급한 건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방송 촬영이 문제로 대두될 때마다 제시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작가를 예로 들면 우리나라 드라마는 스타작가 한명 또는 두 명이 맡아 극본을 쓰지만 미국은 전혀 다르다. 한 드라마당 수십 명의 작가들이 협업한다. 이에 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담당 작가가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또는 일본과 같이 주 1회 방송시스템 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주 2회 방송되는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사전제작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일주일에 1회씩 70분 총 140분의 드라마를 완성해내야 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은 드라마를 주 1회 방송으로 철저하게 준비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든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제작한다.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의 향상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드라마 제작환경의 문제점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이와 관련된 발언을 지속해서 하고 있다는 건 현재 한국 드라마 제작시스템의 고질병은 이미 곪을 대로 곪아서 터져버린 상태라는 걸 말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방송사, 드라마 제작사 등 나서 제작기간에 좀 더 투자해야 한다. 많은 시간을 들인 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드라마가 나올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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