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다."
절반의 성공. 하지만 부산 아이파크를 이끌고 있는 윤성효 감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은 3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강원 FC와의 홈 개막전에서 2-2로 비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성공적인 스타트라 할 수 있다. 승점 3점을 챙기지 못했지만 시즌 첫 경기의 부담감을 감안하면 승점 1점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새로운 사령탑 데뷔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이 문제였다. 임상협이 전반 2분 시즌 최단 시간 득점으로 포문을 연 부산은 후반 1분 박종우의 페널티킥으로 2-0 리드를 가져갔다. 게다가 상대 강원은 전반 30분 한 명이 퇴장을 당해 10명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그런데 2-0이 되면서 부산은 갑작스런 잠금 수비로 변해버렸다. 시종 강원의 공세에 시달리더니 결국 동점을 내주고 말았다.
경기 후 윤 감독은 여유있게 보였다. 공식 인터뷰실에서 윤 감독은 "선수들이 좀더 집중해서 마무리를 잘지어야 했다. 찬스에 비해 결정력이 부족했다. 그것이 승리하지 못한 요인같다. 결과를 떠나 전반과 후반이 다르다는 점에서 아직 팀이 안정되지 않은 것 같다"고 냉정하게 분석했지만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팀 미팅에서도 선수들에게 "각자 잘되지 않은 점을 생각하기 바란다"는 정도의 말만 남겼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 윤 감독의 마음은 답답했다. 경기 전 "되도록 골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팬들은 아무래도 골이 많이 나오는 경기가 좋다. 결과도 승부가 났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전했던 윤 감독이었던 만큼 2-0 리드 후 갑작스런 수비 축구에 당황했다. 부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윤 감독은 인터뷰실에 들어오기 전 "창피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부산은 전반 원톱으로 나선 방승환을 비롯해 임상협, 윌리암, 김익현, 한지호가 파상 공세를 펼쳤다. 박종우가 공수를 조율했고 중앙 수비수 이정호와 박용호는 장학영, 유지노와 탄탄한 포백 라인을 형성했다. 특히 장학영과 유지노의 오버래핑도 인상적이었다. 전반에만 8차례 슈팅이 나왔다. 이 중 유효슈팅이 5번. 전지훈련 내내 주안점을 둔 '공격 축구에 결정력' 훈련이 효과를 거뒀다.
덩달아 관중들의 함성도 컸다. 쌀쌀한 날씨에도 경기장을 찾은 9711명의 팬들은 연거푸 탄성을 지르며 집중했다. 그동안 수비 위주의 축구를 접했던 관중들로서는 공격적으로 바뀐 부산의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지난 시즌 득점력 빈곤에 시달렸던 부산이었다. 홈에서는 2골 이상 나온 경기가 단 3경기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질식수비'로 성적을 잡았지만 관중동원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2-0의 리드로 한껏 고무됐던 경기장은 그와 동시에 차분해졌다. 부산의 공격 라인이 뒤로 내려서면서 소극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이날 경기를 본 한 부산 관계자가 "전반에 완벽했던 박종우조차 갑자기 이상하게 패스를 했다. 1골 1도움을 기록했지만 사실 후반전에는 뭘 하나 싶었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교체했을 것"이라고 흥분했을 정도다. 또 다른 관계자도 "강원전은 잡았어야 했다. 선수들이 갑자기 풀어졌다. 그러면서 지난 시즌 잠그려는 버릇이 나왔다. 전반 상대의 퇴장이 없었다면 오히려 나을 뻔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윤 감독도 우려했던 부분이다. 윤 감독은 전지훈련을 마치면서 "그동안 수비 지향하는 축구를 하다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아직 선수들이 과감하게 나가지 못한다. 나가라고 해도 겁을 낸다. 무의식적으로 수비적으로 나온다. 아마 올해 안으로 그 습관이 고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부산의 시즌 첫 경기는 희망과 동시에 불안감을 안겨줬다. 문제는 좀더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한 부산 관계자는 "감독님이 정말 '창피하다'고 말했다니 오히려 다행스럽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가려는 감독님이지만 동시에 선수들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다는 뜻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 되면 선수 구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 더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선수들의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