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에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렇지만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홀드왕을 차지하며 마운드에서 내뿜던 존재감은 그대로였다.
박희수(30,SK)는 4일 타이중 인터컨티넨탈구장에서 벌어진 호주와의 WBC 예선 2차전에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결코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4-0으로 앞선 5회 선발투수 송승준이 첫 타자 케넬리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투구수 제한에 걸려 마운드를 내려갔다. 최대한 많은 득실차를 내는 것이 필요한 대표팀은 단 1실점도 아까운 상황이다.
아웃카운트는 하나도 없고 주자는 등 뒤에 있는 상황. 투수에게는 가장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주자가 눈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는 불안감과 함께 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해 홀드왕 박희수에게는 익숙한 상황이다. 승계주자 실점율 11.1%에 빛나는 박희수는 이번에도 주자가 홈에 못 들어오게 틀어막았다.

박희수의 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은 국제대회에서도 통했다. 첫 타자 드 산 미겔을 풀카운트 승부 끝에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을 낚아낸 박희수는 후속 베레스퍼드에 좌전안타를 내줬다. 김현수의 재치있는 수비로 2루 주자의 진루는 막은 상황에서 박희수는 데닝을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2사를 잡고 나자 박희수는 더욱 여유로워졌다. 좌타자 휴즈를 상대로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했고, 헛스윙 세 개로 삼진을 솎아내며 위기를 넘겼다. 이어 6회까지 마운드에 올라 첫 타자 휴즈를 내야땅볼로 처리,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국가대표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박희수의 철벽 계투가 더해져 한국은 호주를 5-0으로 제압하고 첫 승을 거뒀다.
사실 대표팀 합류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박희수다. SK 팀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체질량 수치에서 불합격점을 받아 미국 플로리다 캠프로 떠나지 못했다. KBO는 대표팀 핵심 불펜요원 박희수 구하기에 나섰다. 박희수는 추운 한국에서 훈련하는 대신 2월 초 양상문 수석코치와 함께 대만으로 떠나 홀로 몸을 만들어 왔다.
어렵게 대표팀에 합류한 박희수지만 성공적인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르면서 새로운 '국민노예' 후보로 급부상했다. 박희수 본인 역시 "매 경기에 출전하고 싶다. 새로운 국민노예가 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박희수의 WBC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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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대만)=지형준 기자,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