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SK 퓨처스팀(2군) 전지훈련이 진행되고 있던 속초에서 김용희 퓨처스팀 감독은 “저 선수를 한 번 눈여겨보라. 재미있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이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아직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한 선수가 열심히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1년 뒤, SK의 플로리다 캠프에서는 메이저리그 수석코치까지 지낸 조이 코라 인스트럭터가 단번에 속초에서의 그 선수를 점찍었다. 유심히 그 선수의 연습을 지켜본 코라 인스트럭터는 “저 선수가 몇 살이냐”라고 물었고 “만 19살”이라는 답변에 화들짝 놀라며 “정말이냐. 믿을 수가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대형 내야수가 될 것이다. 잘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례적인 극찬이었다.
이렇게 지도자들의 눈을 한 번에 사로잡은 주인공은 바로 SK의 2년차 내야수 박승욱(21)이다. 상원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SK의 3라운드(전체 31번) 지명을 받은 박승욱은 1년간의 2군 생활을 거쳐 뚜렷한 성장세를 과시하고 있다. 오키나와 연습경기에서는 2루수와 유격수를 번갈아가며 보며 타율 2할7푼3리(33타수 9안타), 4타점 4도루를 기록했다. 이만수 SK 감독도 “팀 젊은 선수 중에서 센스는 가장 좋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감독은 이번 전지훈련을 총평하면서 투수 MVP에는 여건욱 문승원을, 야수 MVP에는 이명기 한동민을 선정했다. 그러면서 박승욱에게는 예정에 없던 특별상을 만들어 자비로 상금까지 줬다. 이유를 묻자 이 감독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제 20살인 선수인데 정말 열심히 했다. 오키나와에서 전 경기에 출전한 것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코칭스태프의 마음에 쏙 드는 성실함까지 보여줬다는 의미다.
전지훈련을 마친 박승욱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해 9월 교육리그를 시작으로 마무리훈련, 전지훈련으로 이어지는 쉴 새 없는 일정에 지쳤을 법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박승욱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더라. 감독님, 코치님, 그리고 선배님들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기술적인 면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자신감의 향상이 큰 소득”이라고 덧붙였다.
비록 연습경기이긴 하지만 2년차 내야수가 이처럼 많은 실전에 나서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그 사이 많은 것을 얻은 박승욱이다. 잘한 기억도 많지만 실책이나 어설픈 플레이를 저지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게 코칭스태프의 판단이다. 선천적인 재능과 센스에 어린 선수답지 않은 투지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감독은 “이명기 한동민 조성우는 너무 성격이 착하다. 하지만 박승욱은 소위 말하는 ‘깡’이 가장 세다”고 놀라워했다. 재능과 성실함, 그리고 투지를 모두 갖춘 선수는 생각보다 찾기 쉽지 않다.
박승욱은 지난해 잠시 1군에 올라왔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박승욱은 “역시 1군이 좋긴 좋더라. 다음에 올라왔을 때는 내려가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했었다”고 회상했다. 이제는 위상이 달라졌다. 연습경기에서의 성과가 워낙 좋아 주전급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박승욱은 몸을 낮췄다. 박승욱은 “주전 경쟁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맡은 임무만 집중해서 하겠다. 부상 없이 시즌을 끝내는 것도 목표다. 그러다보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라고 의젓하게 대답했다.
이제 박승욱은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외국 생활을 마친다.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는데 사우나에 가고 싶다”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특별상으로 받은 상금 2만 엔을 어디에다 쓰겠느냐는 질문에는 “맛있는 걸 사먹겠다. 이제는 먹는 것에 투자를 하겠다”고 또 활짝 웃었다. 유니폼을 벗으니 이제 대학 새내기 티를 갓 벗은 또래들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만큼 젊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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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욱.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