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기록원의 손에 쥐어진 WBC 순위결정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3.05 13: 46

투수들의 투구 수 제한과 등판 휴식기간 강제 지정, 여기에 점수 차에 의한 콜드게임 처리와 승부치기까지, 프로야구에서는 시행하지 않고 있는 독특한 경기규정 채택으로 시작 전부터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던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규정이 1라운드 탈락위기에 내몰린 한국대표팀의 처지와 맞물려 다시 한 번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대진팀들이 서로 물고 물리는 현상으로 같은 승률을 가진 팀들이 2개 이상 나타났을 경우에 그 우선 순위를 가르는 방식에 관한 것으로,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되고 있긴 하지만, 만약을 위해 이면에 자리한 좀더 깊숙한 내용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사실 동률 팀의 서열을 판가름하는 대회규정은 발표되었을 무렵만 해도 그러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얕잡아 볼 상대는 결코 아니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우리 대표팀이 무난히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지 않겠느냐는 일반적 예상을 깨고 네덜란드에 0-5로 패하고, 한국을 누른 네덜란드가 대만에 3-8로 역전패하는 연이은 결과는 한국대표팀의 2라운드 진출 길을 아주 험난하게 만들었고, 결국 복잡한 경우의 수까지 따져야 하는 일은 당장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우선 이번 WBC에서 적용되는 동률 팀의 순위를 구분짓는 규정을 나열하면 다음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첫째, 같은 승률을 가진 팀이 2개 팀이 나왔을 경우, 승자승 원칙이 적용된다. 순위 경쟁관계에 있는 팀과의 맞대결에서 누가 우위를 점했느냐 하는 것이 순위가름의 열쇠다.
 
두 번째는 같은 승률을 가진 팀이 3개 팀이 나왔을 경우인데, 이 부분은 내용이 좀 복잡하다.
WBC 대회규정에 의하면 팀별 TQB(Team Quality Balance, 이닝당 득실차)를 따진다. 자못 생소한 이 규정은 총 득점을 총 공격 이닝으로 나눈 수치에서 총 실점을 수비 이닝으로 나눈 수치를 빼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순위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단순 득실점이 아닌 이닝까지 고려되는 가장 큰 이유는 콜드게임과 연장전이 시행되는 관계로 경기마다 이닝이 일정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승률이 같은 3개 팀간의 상호대결 결과만을 전제로 계산하는데, 소숫점으로까지 나타나는 구체적인 결과수치는 설명하기에 너무 복잡한 감이 있어 단순화시켜 설명해보도록 한다. 우열구분 규정인 TQB는 세부적으로 총 4단계의 순위 판가름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첫 단계는 상호대결 경기결과에서 기록된 총 득점수에서 총 실점수를 감하는 방식으로, 남은 숫자가 높은 팀이 상위 순위를 차지한다. 호주를 꺾은 한국이 남은 대만전을 이긴다는 것과 네덜란드가 최약체 호주를 꺾는다는 것을 전제로 세 팀(한국, 대만, 네덜란드)이 나란히 2승 1패를 기록했다고 가정할 때, 순위경쟁 팀들과의 경기를 모두 마감한 네덜란드의 남은 숫자(득실차)는 ‘0’ 이 된다. 두 경기를 모두 5점 차로 이기고 진 때문이다.
 
반면 한 차례의 맞대결을 남겨 놓고 있는 한국과 대만의 현재 득실차는 ‘-5’와 ‘+5’다. 한국이 2위를 차지하려면 네덜란드의 득실차 ‘0’보다는 최소한 높아야 한다. 따라서 6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한국이 대만을 5점차로 이겨 득실차가 세 팀 모두 ‘0’으로 같아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놀라지 마시라.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 우열을 판가름짓는 열쇠는 공식기록원에게 있다는 사실을.
 
득실차에 관한 순위구분 규정 제2단계에 마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3팀 모두 득실차가 같을 경우, 비자책점이 아닌 득점, 다시 말해 상대의 실책으로 얻은 득점이 아닌 정당한 공격으로 얻어낸 득점에서 자책점으로 내준 점수를 빼는 방식으로 순위를 가른다. 공식으로 표현하면 ‘비자책점이 아닌 득점-자책점’이 된다. 당연히 남은 숫자가 커야 선 순위가 된다. 앞서 가정한대로 3팀 모두 득실차가 같게 나왔다고 할 때, 자책점의 많고 적음에 따라 순위가 가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자책점은 뭘까? 자책점이란 기록규칙 항목의 하나로 투수가 허용한 실점에서 수비진의 실책이나 패스트볼(포수가 투구를 뒤로 빠뜨리는 실수)에 의해 상대에게 헌납한 점수를 제외한 점수를 말한다. 즉 안타나 4사구, 도루와 희생타 등 정당한 방법으로 얻어낸 점수가 아닌 점수를 뜻하는 말이다. 실점 중에서 자책점이 몇 점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공식기록원의 몫이다. WBC 대회의 공식기록은 각 라운드 개최지의 자국 공식기록원이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이 대만을 5점차로 이겨 3팀 모두 득실차가 같게 나왔다고 할 때, 자책점 상황은 현재 어떠한 상황일까. 네덜란드가 한국과 대만 전에서 올린 점수 8점(5+3) 중, 자책점은 '7점'(4+3)이다. 반면 네덜란드가 허용한 실점 8점(0+8) 중, 자책점은 '5점'(0+5)이다. 공식으로 보면 7-5로 나머지는 '2'가 된다. 즉 네덜란드의 자책점 득실차는 '+2'다.
 
이를 기준으로 한국과 대만 전의 자책점 수를 가정해 순위를 가상 구분지어보면, 자책점 득실차 -4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은 대만 전에서 5점 이상을 자책점으로 얻어내야 ‘+1’이 된다. 한편 대만은 네덜란드 전에서 얻은 8점 중에서 자책점으로 얻어낸 점수는 5점에 불과하다. 실점한 3점은 전부 자책점. 따라서 자책점 득실차는 현재 ‘+2’(5-3)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다.
 
결국 한국은 대만을 5점차로 이겼을 경우, 자책점 득실에서 대만을 누르려면 적어도 5점 중 3점차 이상을 자책점의 요소로 득점해 벌려야 한다. 대만 전에서 자책점을 3점차 이상으로 벌려 승리하면 한국의 자책점 득실은 최소한 '-1' 이상이 되어, 대만과 같거나 높은 위치에 설 수 있다. 딱 3점차의 자책점 요소를 안고 5점차 승리하면 한국과 대만은 같이 '-1'이 되지만, 이 경우 승자승의 원칙에 의해 한국이 앞서게 된다. 만의 하나 자책점 차이를 2점차까지 밖에 벌리지 못하면 한국은 '-2', 대만은 '0 이 되어 한국이 탈락이다.
 
가지를 더 뻗어 자책점만 가지고 득실차를 따졌는데 3팀이 이마저도 모두 같게 나온다면? 제3단계로 들어가 경쟁팀간의 팀타율이 가장 높은 팀이 앞 순위다. 이때도 안타와 실책을 판정하는 기록원의 판단에 키가 맡겨져 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팀타율까지 정말 3팀이 똑같이 나온다면, 이때는 주최측도 포기다. 그냥 동전 던져 추첨으로 순위를 가른다.
 
이렇게 복잡한 규정을 하나하나 들춰내야 하는 상황이 머리도 아프고 다소 당황스럽지만, 한국이 이러한 규정 자체가 쓸모없게 되는 쪽으로 매듭이 잘 풀려 시원스런 결과를 안고 제2라운드로 당당히 진출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온 국민의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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