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은 충무로의 핫한 이야기꾼에서 더 나아가 흥행 감독이 될 전망이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의 시나리오를 쓴 그는 지난 2010년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영화 '혈투'를 내놓았다. 하지만 흥행 면에서 이 영화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박훈정 감독은 다시 한 번 도전, 준비 기간이 길었던 '신세계'를 2013년 초 영화계에 내놓으며 보란 듯이 재능 있는 영화인임을 입증하고 있다. '신세계'는 한국영화계에서는 잘 안된다는 느와르물로서 이 장르의 최고 흥행에 도전 중이다. 지난 달 21일 개봉해 3월 5일까지 27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는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라는 배우는 느와르에서 쓸 수 있는 최고의 카드라고 말했다. 영화 '무간도'와의 비교 시선에도 "당연한 것"이라고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여유로움이 흘렀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감이다.
- '혈투' 때문에 흥행에 부담이 많이 됐나?

▲ 부담감이 컸다. 대놓고 상업영화을 만들었는데 안됐으니까. '신세계'는 짱짱한 배우들을 데리고 찍었는데 흥행이 안 나오면 어쩌나 싶었다. 느와르 장르가 원래 한국에서 잘 안되는데 이 배우들에 이 스태프들이면 느와르 장르로는 최고의 카드를 쓴 거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둬야 하는데 못 거두면 어쩌나 해서 스트레스가 많았다.
- 이중구 역 박성웅은 정말 히든카드(영화 개봉전까지 크게 노출시키지 않은 것)로 사용한 건가?
▲ 중구 역할이 정청(황정민)하고 대척점에 있고 결코 비중이 낮은 인물은 아이다. 우리끼리 그런 말을 했다. '이중구가 뜨면 영화는 된 거다'라고. 거창하게 히든카드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그런 것에 계산이 있었다고는 할 수 있다.
-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혈투', '신세계'..왜 남자 얘기만 하는가?
▲ 남자들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남자들의 세계이더라.
- 언제부터 이 이야기('신세계')를 구상했나?
▲ 전체 이야기는 몇 년 됐고, '신세계' 부분만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구상 했다.
- '무간도'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 부담은 아니고, 사실 100% 그 얘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참고한 것은 아닌데 개인적으로 '무간도'를 좋아한다. 숨기거나 피하거나 할 마음은 없다.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하니까. 한국에서 언더커버 얘기를하면서 '무간도' 얘기는 못 피해갈 것 같다. 사실 언더커버 영화는 굉장히 많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무간도'가 최고의 언더커버 영화였으니 필연적으로 이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
-이중구(박성웅)가 등장하는 첫 장면은 영화 '대부'의 오마주가 맞나?
▲ 맞다. 그 장면을 좋아한다. 중구는 돈을 우아하게 안 뿌리고 착착 싹 던지더라. 하하.
- 언제부터 이야기꾼 기질을 보였나?
▲ 원래 어릴 때 만화가가 되려고 했다. 애들이 50원, 100원씩 내고 내 그림을 봤다. 중학교 때. 그런데 그림이 안 늘어서 만화가는 안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영화로 틀었다.
- 취향이 원래 하드한가?
▲ 절대 아니다. '가을날의 동화' 같은 영화 좋아하고 '야반가성'이나 '첨밀밀'도 좋아한다. (유난히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건가?) 내가 홍콩영화 전성기 시대 아닌가.
- '신세계'의 장점은 느와르이지만 내용이 이해하기 쉽다는 것도 있다.
▲어려운 소재인데 이야기까지 어렵게 써버리면 쓰는 사람도 힘들고 찍는 사람도 힘들다. 소재가 흔한 소재이면 대단히 꼬아도 상관이 없는데, 무거운 소재를 꼬아버리면 영화가 힘들다. 그래서 '부당거래'도 쉽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 얘기를 정확히 해야한다면 쉽게 풀어야 한다.
- 황정민 같은 경우는 '부당거래' 때 류승범, 유해진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줬다면, 이번에서는 마음껏 연기하라고 풀어놔 준 것 같다. 일부러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
▲제일 먼저 최민식 선배가 하기로 했기 때문에 정청 배우 선택에 여지가 별로 없었다. 강과장(최민식)과 대척점에 있고 그 포스에서도 뒤지면 안 되지 않나. 한국에서 그런 배우가 몇 명 안 된다. 황정민 선배에게 기회는 내가 준게 아니라, 그 분이 내게 준 거다.
- 영화는 유난히 클로즈업이 많다. 의견이 분분한데?
▲답답하다는 분들도 있더라. 우리영화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배우들이다. 캐릭터들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서로를 대한다. 그래서 미묘한 감정 변화나 표정의 움직임, 미세한 눈빛 변화나 입떨림 같은 것들을 잡아 내고 싶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강과장이 불쌍하다. 목적 자체에 중독돼 버린 사람이다. 강과장의 행위는 공권력을 넘어섰다. 목적은 선했지만 행위는 악하다. 개인적으로 강과장은 그 프로젝트 자체에 괴로웠을 거다. 하지만 한 프로젝트 담당자이자 조직의 일원으로서 이 사람은 절대 인간적일 수 없다. 강과장은 마지막까지 얻은 게 없다. 그래서 약간의 연민이 간다.
- 강과장과 자성(이정재)의 관계가 끈끈하지는 않다.
▲강과장이 영화에서 예전에 돌아선(배신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듯이 그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렇기에 자기 부하직원들에게 애틋하지만은 않을거다. 그리고 상황 자체가 서로 드라이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사실 '무간도' 속 인물들을 보며 이해가 안 된 부분이 있다. 윗사람이 계속 거짓말한 거거든. 결국 이용한 건데 말이지. '중국 사람들은 정이 많은가봐'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자성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날 위에 서 있는 기분일 것이고 신경쇠약에 걸릴 만한 세월이다. 하지만 자성은 대안이 없다. 둘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모든 인물들의 마지막 장면이 좋다. 결국에는 그 마지막 장면 하나를 위해 달려가는 거니까. 처음부터 그 인물의 마지막 장면을 위해 앞을 맞춘다.
- 영화의 에필로그에 현 극장판 버전을 선택한 이유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관객들이 많이 힘들었을텐데 약간 회복되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두 번째 연출, 스스로 발전한 것을 느끼나?
▲쓰는것도 어렵고 연출도 어렵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는 것 같다. 영화는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 같다.
-영화 말고 드라마는 생각 없나?
▲내가 드라마를 쓰면 방송이 되겠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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