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종호의 룩 패스] 생각 하나가 바꾼 정인환의 축구 인생
OSEN 허종호 기자
발행 2013.03.07 07: 03

생각 하나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불과 1년여 만에 포기의 막다른 골목에서, 이제는 나라를 대표하는 어엿한 선수가 됐다.
이제는 8년 차 축구선수 정인환(27, 전북 현대). 하지만 정인환에게 2년 전까지 축구는 아무 것도 아닌 미미한 존재였다. 정인환 스스로가 "나의 행동은 축구 선수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인환에게 축구란 그저 시간이 되면 하는 틀에 박힌 일과 중 하나였다. 그는 "전남 시절 그저 시간에 쫓겼다. 해당 시간이 되면 축구를 했고, 그 시간에 끌려갔다. 다들 먹는 몸에 좋은 약도 안 먹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내 행동이 축구 선수의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물론 스스로 느끼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느낄 뿐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않았다. 정인환은 "축구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전북을 떠난 뒤 기회를 잡을 때도 있었고, 잡지 못할 때도 있었다. 전남은 물론 인천에서도 2011년까지 축구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서 기대의 눈빛만 받으니 그는 더욱 주눅 들었다. 그는 "신인 때 많은 기대를 받았다. A대표팀에도 발탁됐다. 하지만 내가 왜 발탁됐는지 이유를 몰랐다. 발탁되더라도 출전할 자신감도 없었다. 게다가 부상까지 당했다"며 과거를 돌이켜 봤다.

하지만 2012년을 기점으로 무기력하기만 하던 정인환의 축구인생은 확연하게 바뀌었다. 그저 시간이 되면 훈련을 하고, 경기에 뛰고, 다시 훈련을 하는 등 반복된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던 것이 달라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는 정인환의 팔에 채워진 주장 완장이었다.
"나이가 먹으면서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하고 싶었던 주장을 하게 됐다"는 정인환은 "또한 올스타전에도 나가서 2002 한일 월드컵 4강 멤버들과 축구를 하게 됐다. 관중도 많고 말로만 듣던 박지성 선배도 보고 신기했다. 그러다가 문득 축구를 잘해야 이런 곳에 계속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경기를 치르는 데에 있어 책임감도 더 생기고, 성적도 잘 나왔다"고 말했다.
책임감은 생활 여러 곳에 영향을 끼쳤다. 훈련 자세부터가 달라졌다. 그리고 훈련 외 시간에도 축구를 생각했다. 정인환은 "이제 자기 전에 미리 이미지 트레이닝하는 것은 기본이 됐다. 커버링과 헤딩 상황을 떠올린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하다 보니 그런 상황이 경기장에서 나와도 쉽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며 "코치님들이 자기 전에 항상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라고 하셨는데 이제서야 그 효과를 확실히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생각의 변화는 과정 만큼 결과로도 나타났다. 정인환은 인천 짠물 수비의 중심이 됐다. 자연스럽게 K리그 베스트 11 수비수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평소 '내가 축구를 하면서 베스트 11의 수비상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정인환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상이었다.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만큼 A대표팀에서의 호출도 따랐다. 예전에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호출이었던 만큼 꺼려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인환은 스스로가 A대표팀에서도 경쟁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불과 1년여 만에 일어난 일이다. 책임감이라는 생각 하나에 모든 것이 바뀐 셈이다. 정인환은 "항상 구단에서 날 보내려고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를 영입하려는 구단들이 생겼다"며 당장 달라진 처지를 느꼈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예전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웃었다면, 지금은 스스로가 즐거워서 웃고 있다. 1년 전까지는 제대로 피지도 못했던 정인환의 웃음꽃은 프로 데뷔 7년 만에 만개하고 있다. 생각 하나가 바꾼 정인환의 축구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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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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