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양의 야구 365]대표팀, 2006년보다 ‘비장함’이 부족했다
OSEN 박선양 기자
발행 2013.03.07 07: 30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일이 됐습니다. 때는 2006년 3월 3일 밤 일본 도쿄입니다. 도쿄의 대표적 유흥가인 신주쿠와 아카사카 밤거리의 주역(?)은 한국야구 국가대표팀이었습니다. 이날 도쿄돔구장에서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 첫 경기인 대만전에서 2-0으로 승리한 한국 대표팀 선수단은 승리 뒤풀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선수들까지 모두 도쿄의 밤을 흠뻑 즐겼습니다. 마치 대회 우승이라도 달성한 듯 술잔을 나누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라이벌 일본전을 남겨두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다음 경기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날 숙적 대만을 꺾고 미국에서 열리는 본선라운드에 진출을 확정지은 것에 일단 만족하며 축제의 밤을 보낸 것입니다.
물론 선수단 전원이 뒤풀이에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1루 슬라이딩 투혼을 발휘하다가 어깨 부상을 당한 주포 김동주와 일본전 선발로 내정됐던 우완 투수 김선우만이 호텔에 남아 숙소를 지켰습니다. 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도쿄의 밤을 만끽한 것이죠. 물론 대회 취재를 갔던 저도 한국의 승리를 기뻐하며 신주쿠 거리를 돌아다녀 선수들과 곳곳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래서 그 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이날 밤 특별하게, 유난스럽게 승리의 기쁨에 흠뻑 젖었던 것은 대만과의 첫 경기에 사활을 걸고 준비하고 승리를 따냈기 때문입니다. 대만전만 이기면 다음 경기 일본전을 설령 패한다해도 미국무대를 밟을 수 있는 방식이었기에 대만과의 첫 경기에 모든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를 달성했기에 코칭스태프도 선수들을 통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른 대표팀은 내친김에 일본도 꺾꼬 전승으로 본선라운드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4강까지 올라 당시 침체됐던 한국 프로야구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중흥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대회전부터 불거진 일본 대표팀의 간판스타 이치로의 망언도 한국 선수단을 똘똘 뭉치게 하고 분발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치로는 당시 "한국이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겠다"는 '이치로 망언'으로 한국인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 말은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의 자존심을 자극했고, 한국은 아시아라운드과 미국에서 열린 8강전에서 일본을 각각 3-2, 2-1로 제압하며 이치로에게 한국야구의 매서운 맛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이 흐른 제3회 WBC 예선 1라운드에서는 그 때의 ‘비장함’보다는 떨어져 보였습니다. 그 때는 한국 대표팀이 최대 승부처였던 대만전에 모든 힘을 쏟아내며 일본도 잡겠다는 ‘비장함’으로 뭉쳤으나 이번 대회에는 선수단 구성 때부터 비장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투타 간판선수들이 부상 등의 이유로 빠지면서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매대회 때마다 가장 중요한 첫 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서 0-5로 영봉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네덜란드가 이전에는 유렵의 변방야구로 약체를 평가받았으나 지난 대회부터 돌풍을 일으킨 복병임을 감안하고 전력을 다해야 했지만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네덜란드는 이전 백인들이 주축이던 사회인 야구가 아니라 이제는 도미니카 공화국 선수들을 귀화시키는 등 야구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다수 포진한 ‘흑인 네덜란드팀’임을 주지하고 경계해야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결국 대표팀은 마지막 경기서 홈팀 대만을 3-2로 이겼지만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며 씁쓸하게 귀국 보따리를 싸야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자만했다는 평이 나오기도 하고 일본 언론에서는 일본과 한 조가 안돼 한국팀이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평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저는 ‘비장함 부족’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2006년 대표팀은 한국야구의 우수함과 국내 야구 부활의 선봉장이 되겠다는 ‘비장함’으로 무장해 있었습니다. 덕분에 라이벌 일본을 2번씩이나 꺾는 등 전세계에 한국야구의 우수함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1라운드 정도는 쉽게 통과할 것이라는 자만심 등으로 비장함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제1회 대회 때처럼 병역혜택 등의 메리트가 없어 선수들의 긴장감이 덜하는 등의 요인도 있습니다.
그래도 태극마크를 단 이상 국가대표로서 자부심과 애국심으로 무장하고 대회에 임했어야 하는데 그게 좀 부족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으로 국제대회에 나서는 대표팀은 항상 ‘비장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이번 대회와 같은 실패를 피할 수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축제를 마음껏 즐긴다면 그 누구도 대표팀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1회 대회 때 대만전을 이기고 선수단 대다수가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렸어도 당시 누구도 탓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OSEN 스포츠국장 su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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