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는 손시헌 선배가 FA로 이적하면 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데. 아니에요. 저는 손시헌 선배 덕택에 유격수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었는걸요”.
지명 당시 팀은 그를 ‘10년 대계 유격수’감으로 점찍고 일찍 병역 의무를 해결하게 했다. 그리고 지난해 1군 첫 시즌 가능성을 비췄고 이제는 결여되었다는 평을 받던 자신감을 장착하며 더 좋은 활약을 노린다. 두산 베어스 일본 미야자키 전지훈련 타자 부문 MVP로 꼽힌 허경민(23)은 성실함과 겸손함, 그리고 투지로 시즌 개막을 기다린다.
2009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2차 1라운드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허경민은 2008 캐나다 세계 청소년 선수권 우승 주역 중 한 명인 동시에 또래들 중 가장 안정된 유격수 수비를 자랑하는 유망주였다. 김상수(삼성), 안치홍(KIA), 오지환(LG) 등 동기들이 1~2년차 시즌 1군 무대를 밟으며 경험을 쌓은 것과 달리 허경민은 데뷔 첫 해를 2군에서만 보낸 뒤 곧바로 경찰청 입대했다. 기존 손시헌, 김재호가 있던 이유도 있으나 장기적 계획으로 키우고자 한 팀의 전략 중 하나였다.

지난해 데뷔 처음으로 1군 무대를 밟은 허경민은 92경기 2할6푼6리 14타점 9도루를 기록했다. 첫 1군 생활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 수록 도루 실패 등으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져 위축된 모습을 보인 것은 아쉬웠다. 시즌 초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되던 허경민은 결국 시즌 후 고교 1년 선배 서건창(넥센)의 성공 스토리를 바라보며 박수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지금은 다르다. 허경민은 이번 전지훈련을 통해 가장 기량 성장폭이 큰 야수로 뽑혔다. 공수주에서 고르게 좋은 기량을 보여준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약점으로 꼽혔던 자신감 면에서 괄목상대의 모습을 보였다. 주루사를 저지르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우울한 표정을 짓던 그 허경민은 이제 없다.
“제 스스로도 가장 먼저 자신감을 강조했고 코칭스태프께서도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셨어요. 코칭스태프께 가장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1차적인 스탯보다는 수비율이나 도루 성공률 같은 세부 스탯 면에서 정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어요. 저는 아직 백업 선수니까요. 그래도 지난해보다 좀 더 좋아지는 것을 지금 느끼고 있는 만큼 이 기분을 시즌 때도 제대로 느끼고 싶습니다”.
그와 함께 허경민은 데뷔 첫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 롯데 1승 3패)을 떠올렸다. 비록 벤치 멤버였으나 뜨거운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그 그라운드에서 함께 열기를 나누며 상위 시리즈 진출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벤치에서라도 본 첫 포스트시즌이었어요. 역시. 왜 야구선수들이 포스트시즌, 가을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지 알 수 있었어요. 선배들의 패기와 이기려는 의지, 열정을 보면서 제가 갖춰야 할 점도 많이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팀이 주목하는 미래 주전 유격수지만 현재는 10년 선배 손시헌이 주전 유격수로서 자리를 공고히 지키고 있다. 손시헌이 올 시즌을 마치고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취득하기는 하지만 프랜차이즈 스타라 잔류 가능성이 높다. 허경민 본인에게는 자주 출장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 그러나 허경민은 “손시헌 선배와 같은 팀에서 최대한 오래 뛰고 싶다”라며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재차 확인시켰다.
“WBC 대표팀에 가셨을 때도 수 차례 통화도 하고 룸메이트로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어요. 부상 없이 올 시즌 FA로 대박이 나셨으면 좋겠고 빈말이 아니라 정말 우리 팀에서 함께 계속 오랫동안 같이 야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손시헌 선배 덕분에 유격수를 맡는 데 대한 애착과 자긍심이 커졌으니까요. 물론 훗날 은퇴하시면 그 때는 제가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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