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메이저리거로서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가진 에이스. 그러나 잇단 부상에 발목 잡히며 무적 신세로 재취업을 노린다. ‘대만 특급’ 왕젠밍(33)에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은 재등용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
대만은 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일본과의 2라운드 1차전에 왕젠밍을 선발로 내세운다. 7일 셰장헝 감독은 팀의 합동 훈련이 끝난 뒤 왕젠밍의 선발 등판에 대해 이야기하며 “5~6회까지 버텨준다면 우리에게도 반격 기회가 올 수 있을 것”이라며 왕젠밍이 80구 투구수 제한 속에서 경제적 이닝이터로 활약해주길 바랐다.
왕젠밍은 한때 가장 성공한 아시아인 메이저리거 중 한 명이 될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00년 뉴욕 양키스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왕젠밍은 5년간 마이너리그에서 갈고 닦은 뒤 2005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특히 2006년 19승6패 평균자책점 3.63, 2008년 19승7패 평균자책점 3.70으로 활약하며 양키스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19승은 2000년 박찬호의 18승을 넘어 아시아 투수 역대 한 시즌 최다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2009년 어깨 수술을 받은 뒤 2010년을 통째로 재활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양키스와 재계약에 방출된 뒤 워싱턴 내셔널스로 이적한 그는 2011년 4승3패 평균자책점 4.04으로 가능성을 보이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이도 잠시. 지난해 햄스트링과 엉덩이 부상에 시달리며 고작 10경기에서 2승3패 평균자책점 6.68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재계약에 실패하며 무적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대로 야구를 접을 수는 없는 만큼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들이 출전하는 WBC 무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 왕젠밍의 의지다. 에이전트 앨런 네로에 따르면 복수의 구단들이 왕젠밍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WBC에서 인상적인 피칭으로 선택의 폭을 넓히고 계약 조건도 유리하게 끌어내겠다는 계산이 서 있다.
일단 지난 2일 1라운드 호주전에서 왕젠밍은 특유의 날카로운 싱커를 보여주며 6이닝 4피안타 무실점 호투로 스카우트들 앞에 무력 시위를 펼쳤다. 최대 65구의 투구수 제한 속에서도 왕젠밍은 싱커로 경제적인 투구를 펼치며 6이닝까지 제 역할을 해냈다. 땅볼 유도형 구종인 싱커가 있는 만큼 셰장헝 감독도 “왕젠밍이 5~6회까지 버텨준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만큼 이닝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문제는 이번에는 호주가 아니라 컨택 능력이 좋은 일본과 맞붙는다는 점. 일본은 앞선 2번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던 바 있다. 해외파가 배제된 국내파 라인업이지만 지난해 센트럴리그 타격왕(3할4푼) 아베 신노스케를 비롯 초노 히사요시(이상 요미우리), 가쿠나카 가즈야(지바 롯데), 이토이 요시오(오릭스) 등 컨택 능력을 갖춘 타자들이 있다. 혼다 유이치(소프트뱅크), 도리타니 다카시(한신) 등도 파울 커트 등으로 왕젠밍을 괴롭힐 수 있는 타자들이다.
한때 양키스를 대표하는 에이스였을 정도로 화려했던 시절은 어느덧 사라지고 연이은 부상으로 인해 투구폼까지 망가지는 등 늪에 빠진 상태가 되어 이제는 WBC에서 새로운 기회를 노려야 하는 입장. 왕젠밍에게 WBC는 새로운 등용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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