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잘 안된다는 청소년 관람불가 느와르 장르 영화가 2년 연속 터지고(?) 있다. 그것도 비수기라 불리는 2월 극장가에서 말이다. 이제 한국형 느와르물은 볼 만한 장르로 발전했을까?
지난 해 2월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가 흥행에 성공한 범죄느와르물 사례로 남을 조짐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지난 해 2월 2일 개봉해 472만여명(영진위)의 관객을 동원했고, 지난 달 21일 개봉한 '신세계'는 개봉 17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다.
두 영화의 성공은 충무로의 연기파 배우에 대한 관객들의 믿음을 보여준다. 즉 이 영화들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캐스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배우들도 존경하는 연기의 레전드라고 불리는 최민식이 두 편에 모두 출연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파란만장한 세월 속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극의 중심인물이었다면, '신세계'에서는 단단한 정삼각형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최민식을 필두로 하정우, 황정민, 이정재 등 소위 국가대표 급의 충무로 대표 남자배우들은 한국 느와르 영화를 볼 만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하정우와 최민식은 지난 해 극장가 신드롬의 주역이었고, '신세계'의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은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는 느와르 장르에서 최고의 카드를 쓴 것이기에 (흥행에) 부담이 됐다"라고 전한 바 있다. 비단 최민식 뿐 아니라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소화하고 연기로 감동시킬 수 있는 배우들이 이 장르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연기 잘하는 남자 배우들의 활약은 느와르는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편견을 넘어 여성관객들까지도 적극 흡수했다. 실제로 '범죄와의 전쟁', '부당거래' 등은 여성 관객들에게 8점 이상의 좋은 평점을 얻은 영화들로 기록돼 있다. 롯데시네마 성별 예매율에서는 '신세계'의 여성 관객 비중이 55%를 차지했다.
한국형 느와르물의 이야기적 측면에서는 일단 가능성은 열었다. 느와르물 같은 경우는, 영화를 많이 보며 성장한 영화광 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영화를 많이 봐 온 관객들이 보는 경우가 많다. 즉 감독과 관객, 둘 다 팽팽한 전문가적 식견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말랑말랑 멜로나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린 휴먼드라마 보다도 촘촘한 만듦새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르일 수 있다.

'범죄와의 전쟁'과 '신세계'는 둘 다 조직 세계를 그리며 진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적어도 두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처럼 과도한 우정에 대한 묘사는 없고, 조폭을 그린 기존 한국영화들과도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90년대, 처음으로 '반달'이라 불리는 건달과 민간인의 중간 인물을 보여주며 조직을 넘어 사회의 문제로 비집고 들어갔다. 해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이 족보상으로 먼 친척인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와 손을 잡고 부산의 암흑가를 접수해가는 모습은 인맥과 혈연 집단으로 이뤄진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하고,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입지가 흔들리면서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음모를 짜는 사람들의 모습은 미화보다는 조롱에 가까웠다. 여기에 정치계와 폭력계의 합작과 음모, 합의와 회유는 그물망으로 얽혀져 있는 한국의 권력체계로까지 확장했다.
'신세계' 역시 표면적으로는 국내 최대 조직인 골드문을 배경으로 언더커버와 경찰, 그리고 조직의 1인자가 되려는 이들의 싸움을 보여주지만, 체제와 권력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다.그리고 이것은 갱스터 영화가 갖고 있는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다.
언더커버라는 소재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 2의 무간도'라 불리고 우려도 샀지만, 그래도 '신세계'만이 갖는 미덕은 충분하다는 평이다. '범죄와의 전쟁'에서부터 '대부', '좋은 친구들' 같은 갱스터 고전들과 비교하는 반응들도 등장했다. '신세계'에는 실제로 '대부'를 오마주한 특정 장면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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