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의 딱] 농담을 '다큐'로 받는 일 만큼 분위기 싸해지는 상황이 있을까. 농담의 허용 범위를 분간 못하는 막말도 분위기 싸해지기는 마찬가지다.
11일 현재 연예계는 이 '싸한' 분위기가 누구 때문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지난 9일 첫방송을 시작한 KBS '최고다 이순신' 덕분이다. 아이유가 연기를 잘하나 못하나, 지켜보고 있던 일부 시청자의 레이더망에 이순신 장군을 '감히' 100원짜리에 비유한 대사가 딱 걸렸다. 누군가는 분위기 파악 못한 농담의 수위를, 누군가는 앞뒤 없이 딴죽부터 걸고 보는 꽉 막힌 시청 태도를 문제 삼는다.
사실 이같은 일은 꽤 자주 목격된다. 매우 핫했던 사례로는 2008년 이효리의 '유 고 걸' 뮤직비디오 예고편이 꼽힌다. 이효리는 가슴골이 보이는 간호사 복장을 했다가 간호사를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효리가 실제로 모든 간호사들은 무릇 이 정도 섹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건 아니었지만, 해당 장면은 공분을 샀고 이효리는 결국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직업을 올바르지 못하게 패러디한 예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진 않다.

직업은 매우 예민한 사안 중 하나다. 2007년 서울시의사협회는 한 드라마에 대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의료사고를 미화하는 드라마라도 있었나 싶겠지만 그 대상은 MBC 일일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였다. 마치 한국의 모든 의사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것처럼 묘사됐다는 게 그 이유다. 여론이 의사편은 아니었는지 이후 잘나가는 의사 이야기에 불륜 설정을 살짝 버무린 MBC '하얀거탑'은 무사히 방영됐다. 최근 방송된 JTBC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에서도 피부과 의사는 바람둥이 남편으로 등장했다. 그러고보니 성공했지만 속물적이고 가정에 무심한 남자 캐릭터로는 의사가 꽤 많긴 하다.
그외에도 2006년 SBS 주말극장 '하늘이시여'가 치위생사와 간호사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대사를 넣었다가 끝없는 논란을 만들었고, "어디 여자가 없어서 분장사야?"라는 대사로도 구설수에 올랐다. 2011년 KBS '로맨스타운'은 원제가 '식모들'이었으나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등의 항의를 받고 제목을 바꿨다. 작가가 뭘 쓰고 싶었던 간에, 해당 단어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남성 단체들은 '개'에 민감한 것으로 보인다. 백지영은 지난해 남자친구를 개에 비유한 '굿보이'를 발표했다가 남성연대로부터 음원유통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았다. '짖어댄다', '주인을 물어' 등 남성을 비하 내용의 가사가 담겼다는 이유다. 이 단체는 앞서 2011년, 영화 '너는 펫'이 남자를 개로 규정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바있다. 남녀관계가 '역전'됐음을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하려던 작품들이 논란의 대상에 오른 것.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는 용납돼선 안될 표현이면서 남자한테는 써도 되느냐는 의견이었다. 그래도 돌연변이 늑대는 꽤 멋있었는지, 영화 '늑대소년'은 남녀관객을 두루 만족시키며 흥행했다. 돌연변이니까, 뭐.
하이라이트는 강용석 전의원이 썼다. 그는 2011년 KBS '개그콘서트-사마귀 유치원'에서 개그맨 최효종이 터뜨린 대박 대사에 발끈했다.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 번에 먹으면 돼요" 등의 대사가 국회의원을 모욕했다는 것. 그러나 국회의원 편은 별로 없었기에, 강 전의원은 심한 '역풍'을 맞고 결국 사과까지 했다.
종교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한 가수는 노래에 특정 종교를 잠깐 언급하려다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적 있다. 표현의 자유가 많아진 요즘도, 한국 작품에서 종교인을 다루거나 언급하는 건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금 갑갑한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이든, 의사든 할 것 없이 시원하게 돌직구를 날려주는 미국 드라마 속 대사가 부럽기도 하다. 작품 속에는 치매 걸린 공화당원부터 해리성 인격 장애에 걸린 의사, 연쇄살인마 형사, 불륜을 벌이는 대통령까지 매우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맘껏 움직인다. 대사도 실제 대상이 들으면 아연실색할만한 수위다.
비결은 스킬이다. 아슬아슬한 대사와 설정 뒤에는 반드시 이것이 '잘못됐다'는 사인이 함께 들어간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아버지의 신랄한 대사 다음에는, '또 시작이군'이라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는 딸의 표정이 잡힌다.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등장인물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꽉 막히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캐릭터라는 묘사에 공을 들인다.
'최고다 이순신'이 잘못한 게 있다면 바로 이 스킬일 것이다. 문제는 이순신 장군을 '100원짜리'에 비유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그려낸 방식이다. 상식적으로 한 회사의 면접을 보는 사람들이 구직자에게 이름을 갖고 놀리며 '독도를 지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설정이다.(극중 이순신은 토익 600점에, 운전면허증만 갖고 있으면서 취업이 안됐다고 슬퍼하는데 그것도 이상하다) 더구나 '100원짜리' 대사는 앞으로 시청자의 호감을 사야할 남자 주인공인 조정석의 입에서 나왔다. 이름 갖고 놀리는 건 보통 학창시절에 '졸업'하게 마련인데, 남자 주인공의 미성숙한 인격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면 이 장면은 좀 황당할 수 있다.
모두가 바른 말만 하는 드라마는 재미없다. 표현 영역을 좁게 잡아두고, 그러면서도 재미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추기란 정말 쉽지 않다. 창작자들의 고충도 이해된다. 그래도 '나쁜 말'을 하는 스킬은 분명히 있다. 모든 '나쁜 말'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것도 아니다. 완성도가 높다면 인정한다고도 한다. 누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건가. '네 탓'이라는 줄다리기는 쉽게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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