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야구를 활성화시키며 미래를 위해 동량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 그래서 경기를 끌고 가기 힘든 시점을 만들지 않는 투수력으로 보강해야 한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안타를 칠 확률이 30%만 넘어도 잘 친다는 평가를 받는 타격. 반대로 생각하면 투수가 70% 가량은 이기고 들어가는 확률인 만큼 안정된 투수진이 구축되지 않으면 그 팀은 강팀으로 불릴 수 없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2라운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쿠바와 대만 감독들은 모두 ‘자국 투수력의 보완’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아마추어 최강자로 불리던 쿠바는 지난 1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WBC 2라운드 1조 패자부활 최종전에서 6-7 9회 끝내기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2000년대 들어 네덜란드에게 심심치 않게 패하며 새로운 천적 관계를 형성하던 쿠바는 결국 네덜란드에게 당한 2패로 2006년 1회 대회 준우승 이후 2회 연속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에 앞서 대만은 8일 일본과의 경기에서 연장 10회 3-4로 석패한 뒤 이튿날(9일) 쿠바에 0-14 콜드게임으로 완패하고 말았다. 8일 일본전 선발로 나선 ‘국민 투수’ 왕젠밍(무소속)이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일본전 승리 발판을 마련했으나 결국 뒷심 부족으로 패했고 9일 쿠바전에서는 믿었던 양야오쉰(소프트뱅크)이 ⅓이닝 4실점으로 무너져내렸다.
탈락이 확정된 후 양 팀 감독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부분은 바로 투수진의 확충이었다. 셰장헝 대만 감독은 쿠바와의 경기 후 “몇몇 투수들에게 의존도가 높은 대회를 펼쳐야 한다는 점은 분명 커다란 약점이다. 앞으로는 아마추어 및 리그 활성화를 통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풍부한 국내 투수진을 갖춰 다음 WBC에 도전해야 한다”라며 대만 야구를 위한 바람을 잊지 않았다.
볼티모어 선발진의 주축으로 떠오르며 지난해 각광받은 천웨인(볼티모어)이 무릎 부상 여파로 인해 WBC에 불참한 대만. 게다가 대만은 잇단 승부조작 사태로 인해 현재 4개 팀만으로 구성된 소규모 자국 리그를 갖고 있다. 선수를 뽑을 만한 토양 자체가 부족했고 메이저리그 경력의 왕젠밍과 궈훙치(무소속), 국내파 에이스 판웨이룬(퉁이)과 일본에서 뛰는 양야오쉰 정도를 제외하면 확실히 믿을만한 투수가 아쉬웠던 대만이다.

빅터 메사 감독도 마찬가지. 메사 감독은 네덜란드전에서 아깝게 패한 후 인터뷰실에서 “1000만이 넘는 인구가 국기를 야구로 삼고 있다. 그만큼 야구 유망주를 발굴하기 좋은 환경이지만 아쉽게도 투수 유망주는 그리 많지 않다”라며 운을 뗐다. 과거 쿠바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리반 에르난데스, 올랜도 에르난데스, 호세 콘트라레스는 물론 최근의 아롤디스 채프먼(신시내티) 등은 메이저리그 입성을 위해 줄줄이 망명길에 올랐다. 결국 잇단 공백을 메우기 위한 순조로운 세대교체가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쉬웠다는 메사 감독의 이야기다.
“탄탄한 학원야구를 배경으로 한 일본의 야구 환경이 부러웠다. 우리도 그렇게 학원 야구를 활성화하며 많은 투수 유망주를 배출하고 그와 함께 대표팀의 투수층도 두껍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4강 진출에 성공한 네덜란드도 투수층의 깊이는 썩 깊지 못했다. 따라서 네덜란드는 팀의 국제용 좌완인 디에고마 마크벨을 가장 중요한 경기와 승부처에 넣고 투수 기용이 요원한 경기에서는 일찍 경기를 포기하는 전략을 보여주었다. 1라운드 한국전 5-0 승리 후 대만에 3-8로 패하고 2라운드 들어 8일 쿠바전 6-2 승리 후 10일 일본전 4-16 대패로 롤러코스터 경기력을 보여준 것이 이를 잘 알려준다. 헨슬라이 뮬렌 감독도 2라운드 돌입 이전 “타력은 자신 있는데 투수들이 얼마나 잘 경기를 만들어주느냐가 문제다”라는 고민을 털어놓은 바 있다.
실패한 장수의 핑계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국 대표팀의 미래를 위해 투수진 완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강조했다. ‘야구의 꽃은 홈런’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깨끗한 토양이 될 강력한 투수진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farinelli@osen.co.kr
도쿄(일본)=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