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수빈이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스크린과 TV에서만 그의 모습을 봐 왔던 관객이라면 연극을 보기 전 그의 또 다른 모습에 놀랄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연극 ‘광해’는 동명의 영화와 참 많이 닮아 있으면서도 색다르다. 두 작품은 기본적인 이야기 흐름과 등장인물들의 성격 등은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영화가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더 큰 스케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면, 연극 ‘광해’는 단지 몇 평의 공간인 무대에서 소수의 등장인물만으로 그 모든 것을 표현한다. 그렇기에 연극에서는 배우들이 맡은 임무는 막중하다. ‘’광해‘와 같이 주인공이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극이라면 더욱 그렇다.
주인공 광해와 하선 역, 1인 2역을 맡은 주인공 배수빈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무대를 압도한다. 광해는 첫 등장부터 항상 불안에 잠겨있고 신경질적인 모습이다. 배수빈은 그런 광해를 표현하며 작지 않은 공연장을 꽉 채운다. 단순히 그의 목소리가 크다거나 왕의 용포를 입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눈이 벌개지고 목이 쉴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광해의 모습과 함께 등장하는 하선은 영 딴판의 인물이다. 그는 겉모습은 굉장히 가볍지만 속은 사려 깊다. 배수빈은 코믹하면서도 따뜻한 하선을 연기하며 1인 2역이라 생각되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변신한다. 중전을 흠모하며 그를 위한 시를 읊는 모습이나 무수리인 사월이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에서는 인간적인 왕의 면모를 탁월하게 표현한다. 또한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신하들에게 호통을 칠 때는 진정한 왕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컷 별로 끊어서 촬영이 진행되는 영화와는 달리 연극 ‘광해’는 호흡이 길다. 약 두 시간의 공연 시간 동안 무대 위 배우들은 실수 없이 극을 이끌어 나가야한다. 광해와 하선 역을 맡은 배수빈의 경우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순간이 드물다. 그러나 배수빈은 한 순간도 극의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또한 하선과 광해를 오가며 전혀 다른 인물을 표현할 때도 순식간에 변하는 연기로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광해’의 무대를 채우는 것이 단순히 배수빈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허균, 조내관 역을 맡은 배우부터 중전, 사월, 도부장 역을 맡은 이들까지 여러 명의 배우들이 호연으로 '광해'의 무대를 꾸미고 있다.
영화 '광해'를 본 사람은 천만 명이 넘는다. 그만큼 연극으로 재탄생한 '광해'는 새로울 것이 없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작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이병헌의 광해와 배수빈의 광해는 다른 모습이다. 배수빈은 그만의 존재감으로 또 다른 광해 혹은 하선을 표현하고 있다. 연극 버전 '광해'는 관객에게 다른 감동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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