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문 밖에서 엿듣고, 결정적 증거는 우연히 손에 쥔다?
SBS 월화드라마 ‘야왕’(극본 이희명, 연출 조영광)이 허술한 복수극으로 힘 빠지는 전개를 이어가고 있다. 극 초반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했던 인물들 사이의 갈등구조가 너무 쉽사리 주인공이 마음먹은 대로 풀려가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쫄깃한 전개는 사라진지 오래다.
이 같은 모습은 시청률에도 영향을 끼치는 모양새다. ‘야왕’은 지난 10일 방송이 시청률 18.5%를 기록하며 MBC ‘마의’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결코 낮은 시청률이 아니지만, 인물들 사이의 밀고 당기는 긴장감이 치열했던 전반부 ‘마의’를 누르는 것은 물론, 시청률 20%대 돌파도 무난해 보였던 기세가 수그러든 건 아쉽다.

‘야왕’은 현재 백학그룹에서 쫓겨난 주다해(수애 분)가 석태일(정호빈 분)과 손잡고 대권을 노리며 더 큰 욕망을 품은 인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하류(권상우 분)는 교도소에 다녀오고 변호사 형의 신분을 위장해 다해를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 활약을 펼쳤지만, 그 과정이 지나치게 허술했다.
일례로 지난 방송에서 다해는 과거가 밝혀진 뒤 백학그룹에서 내쳐진 뒤 복수를 다짐하는 가운데, 그룹의 기밀서류를 빼내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룹의 명운을 쥐고 흔들 정도의 기밀서류는 단 박에 뚫릴 수 있는 금고에 너무 얌전하게 보관돼 있었고, 다해는 몇 번의 손놀림을 통해 이를 얻으며 백학그룹의 명운을 손에 쥐었다.
그간 다해와 도훈(정윤호 분), 그리고 도경(김성령 분) 사이의 삼각편대를 형성했던 출생의 비밀도 너무 손쉽게 해소됐다. 도경이 어린 시절 도훈을 낳았지만 누나 행세를 하며 살았던 트라우마는 이를 꽁꽁 숨겨온 세월이 무색하도록 문 뒤에서 이를 엿듣는 도훈의 행동으로 발각될 수 있었다. 더 나가 도훈은 이 사실을 파악한 뒤 수애를 반드시 제 손으로 제거하겠다며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 엉뚱한 감정선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하류가 자신의 형 차재웅 변호사가 살해당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당시 정황을 담은 증거는 우연히 이를 포착한 행인의 사진에 의해 손에 쥘 수 있었고, 하류의 복수전은 또 다시 탄력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손쉬운 선택이 ‘야왕’에 대한 흥미와 인물 감정에 대한 이해도까지 높였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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