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경기 개막전이 열린 지난 9일 사직구장. 우연히 보게 된 롯데 자이언츠 구단 소속의 승용차 뒷좌석에는 목발 한 쌍이 놓여 있었다. 아픈 사람도 없는데 뜬금없이 놓여 있는 한 쌍의 목발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는 이미 한국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다. 바로 롯데의 새 외국인투수로 낙점 받았던 스캇 리치몬드(34)다. 라이언 사도스키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롯데는 그 대체자로 리치몬드를 낙점, 지난해 말 계약을 발표했다. 우완 정통파인 리치몬드는 구위 보다는 정교한 제구력이 돋보이는 투수였다.
WBC 캐나다 대표로까지 선발됐던 리치몬드를 데려오기 위해 롯데는 리치몬드를 설득,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도록 요청했다. 리치몬드가 이를 받아들였고, 결국 롯데는 우여곡절 끝에 영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리치몬드는 지난 1월 사이판 캠프에 합류 하자마자 부상을 당한다. 상황별 수비훈련을 시작한지 30분 만에 미끄러지며 부상을 입었고, 결국 무릎 연골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롯데 구단과 선수 본인 모두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아직까지 시간을 끌고 있지만 리치몬드의 퇴출은 사실상 확정됐다. 롯데는 새 외국인선수 물색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자 리치몬드와 재접촉을 했다. 하지만 리치몬드의 무릎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재활에만 3개월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결국 포기했다.

메이저리그 승격, 국가대표 발탁 등 많은 걸 포기하고 생소한 한국행을 결정했던 리치몬드의 결정은 불의의 부상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갔다. 오죽 아쉬웠으면 부상 후 한국에서 받은 진단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현실을 부정하고 미국으로 재검진을 받기 위해 떠났을까.
사이판에서 만난 리치몬드에게서 친화력과 매너를 엿볼 수 있었다. 당시 구단 관계자는 "한식 위주로 돼 있는 식단에 리치몬드가 적응하지 못한다면 햄버거라도 공수해 와야 한다"며 걱정했지만 첫 날부터 김치와 열무국수 등 한국식 식사를 싹 비웠다. 롯데가 지난 20년 동안 우승이 없었던 걸 이야기로 꺼내며 "구단이 내게 원하는 걸 알고 있다. 팀 우승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리치몬드는 2013년 상반기를 재활과 함께 보내게 됐다. 잠시 한국야구와 인연을 맺었지만 지난 과거는 잊고 새로운 구단을 찾아 나서야 한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의욕이 넘치는 친구였는데 정말 아쉽게 됐다. 우리 팀과는 인연이 아닌 가보다"라며 씁쓸해했다.
시즌 개막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현재까지 롯데는 새 외국인선수를 영입하지 못하고 있다. 타자는 배제하고 선발투수를 중심으로 알아보고 있는 롯데다. 미국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메이저 로스터 진입에 실패한 선수가 하나 둘씩 나오고 있지만 조건에 맞는 선수를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제 시즌에 들어가고 롯데가 새롭게 외국인선수를 영입한다면 리치몬드라는 이름은 팬들의 뇌리 속에서 금방 잊혀 질 것이다. 분명한 건 그는 '먹튀'가 아니라 지독하게 불운한 사나이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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