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의 명함을 버리고 배우라는 타이틀로 SBS 월화드라마 ‘야왕’(극본 이희명, 연출 조영광)에 출연했던 정윤호의 연기 도전이 지난 12일 마무리 됐다. 비록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용당하다 죽음을 맞는 쓸쓸한 마지막이었지만, 정윤호의 연기도전만큼은 한 뼘 더 성장한 모습으로 외롭지 않은 퇴장이었다.
정윤호는 ‘야왕’에서 재벌가 외아들 백도훈 캐릭터를 맡아 2회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스하키에 심취해 아버지 백창학(이덕화 분) 회장과 대립하고, 첫눈에 반한 다해(수애 분)에겐 저돌적인 순정을 바치는 등 재벌가 막내아들의 반항기와 무모한 열정 같은 성향을 차례대로 소화하며 연기자로서의 발판을 다졌다.
정윤호의 연기가 무엇보다 빛을 발한 대목은 다해를 향해 무조건적인 애정을 드러낼 때였다. 관심 있는 여자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환심을 사기 위해 젤리를 한보따리 사서 안기고, 그녀의 신분상승 욕망은 꿈에도 모른 채 미래를 책임지겠다며 손가락을 거는 대목에선 철은 없을지언정 서툰 행동 그 자체가 매력인 ‘연하남’ 캐릭터의 포인트를 제대로 살렸다.

살벌한 ‘야왕’의 정서에 온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백도훈의 몫이었다. 극 후반부 도훈은 믿고 싶지 않은 다해의 과거가 하나씩 맞아들어 갈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앓이 하는 모습으로 죄책감다윈 괘념치 않는 ‘야왕’의 살풍경에 한줄기 이해의 빛을 드리웠다. 오로지 복수기계로 전락한 하류(권상우 분)와 다해의 죽고 죽이기 위한 싸움에서 도훈의 눈물은 이 작품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탕으로 한 작품임을 환기시킴과 함께 복수극이 남기는 씁쓸한 뒷맛을 상기시켰다.
순수했던 마음이 배신당하고, 하늘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입은 깊은 상처를 울음으로 토해내는 해사한 재벌가 막내아들의 슬픔은 비록 노련한 감정 연기는 아닐지언정 찌푸려진 양미간과 덜덜 떨리는 턱으로 도훈의 진심을 느끼는 그에게서 읽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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