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SK의 새 외국인 투수 조조 레이예스(29)가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의 기대치를 높여가고 있다. SK 선발 로테이션의 축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엿보인다.
레이예스는 12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KIA와의 시범경기에서 선발 등판했다. 한국 무대에서 가진 첫 경기였다. 적응 단계라 우려가 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레이예스는 당당했다. 최고 151㎞의 직구를 거침없이 뿌렸다. 결과는 5이닝 3피안타 3볼넷 2탈삼진 2실점이었다. 실점은 박진만의 실책에서 비롯돼 비자책으로 기록됐다. 비록 시범경기였지만 KIA가 정예 라인업을 들고 나왔음을 고려하면 호투였다.
이날 레이예스는 직구 위주의 운영을 선보였다. 총 75개의 투구 중 50개가 직구였다. 구위 점검 및 스트라이크존 적응 차원이었다. 비록 제구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공 자체에는 힘이 있었다. 여기에 간간히 느린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그리고 커브를 섞었다. 변화구도 최고 구속이 130㎞를 오고갔다. 왼손 투수임을 생각하면 구속 자체는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레이예스는 지금 이 시점에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있어야 할 선수였다. 당초 SK는 외국인 투수로 크리스 세든과 덕 슬래튼을 확정했다. 레이예스는 SK의 리스트에 있는 수많은 선수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슬래튼이 갑작스레 은퇴를 결심하면서 레이예스가 대체 외국인 선수로 선발됐다. 이런 레이예스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니 팀으로서는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생각날 법하다.
합류는 늦었지만 기대치가 올라오는 속도는 누구보다 빠르다. 오키나와 연습경기에서는 2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7피안타 6탈삼진 평균자책점 1.29를 기록했다. 이만수 SK 감독도 레이예스를 다른 용도로 활용할 생각을 접고 선발로 못 박았다. 그리고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도 좋은 모습을 선보이자 개막전 선발 후보로까지 언급되고 있다. 초고속 승진이라 할 만하다.
경기장 안팎에서도 순조롭게 적응 중이다. 오키나와 캠프에서는 한국의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려 애썼다. 외국인 투수들이 가장 애를 먹는 주자 견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성준 투수 코치는 “왼손의 이점에다 기본적인 견제 능력도 있는 선수다.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발 빠른 선수들이 많은 KIA와의 경기에서도 주자들의 발을 효율적으로 묶었다. 특유의 붙임성을 바탕으로 선수단에도 녹아드는 재주는 으뜸이다.
관건은 딱 하나, 역시 제구다. 빠른 공을 던지는 레이예스는 간혹 직구 제구가 영점을 크게 빗나가는 일이 있다. 이날 KIA와의 경기에서도 그런 모습이 있었다. 이 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야구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 등 각 좋은 변화구가 빛날 수 있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김광현의 재활 등 왼손의 이탈로 고민에 빠져 있는 SK에 레이예스가 희망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