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지금은 K팝 열풍으로 국내 가요의 활황세가 해외로까지 번져 글로벌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조짐은 이미 1990년대에 예고됐다. 당시 국내 가요시장은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고 현재의 아이돌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원조 아이돌 격의 댄스그룹들이 창궐했다.
룰라는 당시를 대표하던 댄스그룹이었고 HOT와 젝스키스는 확실한 원조아이돌이었다. 그런데 이제 30대 이상의 청중년에 접어든 각 멤버들의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예전의 명성이 빛바래지지 않도록 나름의 위치에서 사회활동에 열심인 멤버가 있는가 하면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도 있다. 왜 어떤 이들은 체면을 구기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어떤 이들은 명예를 실추하고 살아가는가?
대표적인 잘못된 예는 룰라다. 다섯명의 멤버 모두 불명예스럽다.

리더였던 이상민은 가수에서 프로듀서로 다시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불법도박사이트 관련으로 법정에 서는가 하면 개인적인 아픔도 겪는 가운데 손대는 사업마다 깔끔하지 못했다.
룰라에서 솔로로 독립해 재기를 꿈꿨던 김지현은 한때 와인바를 운영하며 사업가로서 뜻을 펼쳤지만 역시 사업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최근 얼굴이 확 달라질 정도로 양악수술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삶이 더 나아지기 원해서라고 할 정도로 그동안 녹녹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그나마 룰라 이후 활동이 탄탄한 듯했던 채리나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어느새 조용히 사라지는 듯하더니 새벽 유흥주점의 살인사건 현장을 통해 언론에 알려졌다.
최악은 신정환이고 그보다 더 최악은 고영욱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신정환은 불법 해외 원정도박으로 법을 어긴 것도 모자라 이를 감추기 위해 대국민 사기극까지 펼쳐 도덕적으로도 추락했다.
고영욱은 미성년자 성폭행 등으로 재판 중이지만 신정환보다 상황은 더욱 나쁘다. 법의 판결을 떠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었고 딸같은 어린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은 도덕적 잣대로 '유죄'다.
젝스키스는 복잡해진다. 은지원만 활발하게 활동하며 팬들의 곁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강성훈과 이재진은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결국 강성훈은 사기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강성훈과 이재진은 먼저 병역비리로 포문을 열었다. 그래서 결국 재입대 판정을 받고 강성훈은 공익근무 요원으로, 이재진은 현역으로 입대했다가 탈영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HOT도 구설수 혹은 불미스러운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명의 멤버들이 하나같이 연예계에서 성실하게 살며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재원은 얼마전 한 여성에게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가 합의해 풀려나며 구설수에서 피해가지 못했다.
문희준 토니안 장우혁 등은 현역가수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운데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며 옛추억을 잊지 못하는 팬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있다.
이에 비해 강타는 걸음걸이가 약간 다르다. 가수 겸 배우로서 중국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사실은 데뷔 이후 소속사 SM을 한번도 떠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소속사에 붙박이로 남아 프로듀서 겸 이사로서 행정과 후배양성 업무도 동시에 하고 있다.
신화는 아주 좋은 최상의 예다. HOT와 젝스키스의 바통을 이어받은 신화는 1998년 데뷔 이래 단 한 번의 멤버교체도, 구설수도 없이 신화라는 이름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아저씨지만 그 인기는 여느 아이돌 못지 않다.
그 비결은 실력을 떠나 끈끈한 정과 의리다. 그 어떤 유혹과 이간질에도 흔들리지 않고 신화라는 구심점 아래 하나로 뭉친 그들의 끈기와 지조가 최장수 아이돌 그룹이란 '신화'를 만든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이었고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현명한 지혜였다.
강타와 은지원은 하이틴 스타라는 한계가 있는 환상에 머물지 않고 재빠르게 현실에 적응한 좋은 예다. 강타는 재빨리 HOT를 버리고 연예인 강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현실적인 판단력을 발휘했다.
은지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가창력 있는 가수로서 치열한 경쟁터에서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래퍼로 승부수를 띠웠고 그것도 쉽지 않다는 판단 아래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예능으로 환승했다.
아이돌은 철저하게 기획사의 기획과 관리 능력으로 생명력이 유지되는 기획상품이다. 물론 걔중에는 타고난 실력과 끼를 갖춘 천상 뮤지션도 없지 않지만 확률은 미미하다. 그렇다면 빠른 세월 앞에 아이돌이 살 수 있고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은 현실인식과 더불어 신뢰와 의리다.
소속사 선택도 중요하다. 성공과 생존의 대표적인 롤모델 HOT와 신화는 SM 출신이고 심지어 강타는 끝까지 SM과의 의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이 실패를 피해갈 수 있었던 근간은 10대 청소년 시절 올바른 기획사에서 가수 이전의 인성교육부터 철저하게 받은 데 있다.
하지만 연예인 교육만 받은 아이돌은 올바른 인성을 쌓지 못하고 스타덤의 마약에 취해 주제파악을 못하고 범죄를 저지른다. 호적의 나이는 지긋해졌지만 정신적 성장이 멈춘 채 우월한 자기도취에 빠져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