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파괴 '뛰는 4번타자' 시대 열린다
OSEN 고유라 기자
발행 2013.03.14 06: 14

무릇 4번타자를 생각하면 타석에 들어설 때부터 투수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큰 덩치를 떠올리기 쉽다.
타점 찬스가 많은 4번 자리에서 큰 한방을 때려내며 경기를 뒤집으려면 그만한 파워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몸이 크다고 해서 힘이 세라는 법은 없지만 날씬한 사람이 빠르다는 것과 같이 야구계의 상식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이 상식을 깬 것이 지난해 프로야구 역대 35번째로 20홈런-20도루를 기록한 넥센 히어로즈의 4번타자 박병호다. 지난해 풀타임을 뛰며 31개의 홈런과 20개의 도루를 동시에 기록한 그는 빠른 발은 아니지만 상대 배터리가 쉽게 방심하는 점을 이용해 2루 베이스를 자주 훔쳤다. 이는 넥센이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뛰는 기폭제가 됐다.

투수들이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는 '투고타저'의 야구계에서 점수를 더 내는 방법 중 하나는 한 베이스 더 가는 주루 플레이다. 어차피 4번타자도 치고 나가면 주자가 되고 득점을 노려야 한다. 어느 타순, 어느 타자든 상대 투수를 흔들어야 한다는 타자들의 고민이 '뛰는 거포'를 낳고 있다.
올해도 이번 추세가 이어질 예정이다. 많은 감독들이 "올해는 뛰는 야구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동렬 KIA 감독은 팀 200도루를 목표로 잡았다. 김시진 롯데 감독은 넥센 감독 시절부터 선수들에게 '죽더라도 뛰어보라'고 강조했다. 타격에는 슬럼프가 있어도 주루, 수비에는 슬럼프가 없다는 것이 류중일 삼성 감독의 지론이다.
올 시즌 4번타자감으로 유력한 롯데 외야수 전준우는 "4번타자라고 해서 홈런만 치고 느리라는 법은 없다. 병호처럼 달리는 4번타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해 90kg 후반대였던 몸무게도 체지방을 줄이기 위해 90kg 초반대까지 뺐다.
박병호는 "도루를 신경쓰면서 노리지는 않겠지만 기회가 되면 뛰겠다"고 했다. 최근 4번타자계의 뉴페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박병호와 전준우, 두 명의 선수를 필두로 거포들이 도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까. 야구계의 상식을 바꿔나가고 있는 젊은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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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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