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열린 인삼공사와 흥국생명과의 시즌 최종전. 인삼공사의 코트에는 남들 다 가진 외국인 선수가 없었다. 웜업존에서 대기하고 있는 선수는 단 세 명뿐이었다. 인삼공사가 올 시즌을 얼마나 험난하게 치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인삼공사의 2012-2013시즌은 최악이었다. 지난 시즌 우승팀이 최하위까지 추락했다. 30경기를 치르면서 5번을 이기는 데 그쳤다. 프로배구 역사상 가장 가파른 추락이라고 할만 했다. 여러 악재가 겹친 결과였다.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손꼽혔던 몬타뇨는 팀을 떠났고 장소연 김세영 한유미라는 ‘언니’들의 은퇴 공백도 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국인 선수 선발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드라간은 태업으로 일찌감치 퇴출됐고 케이티도 기량이 부족했다.
팀 전체의 스트레스는 극심했다. 최근 몇 년간 정상권에 머물며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선수들이었다. 그런 선수들이 연이은 패배에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가뜩이나 어린 선수로 재편된 팀이라 심리적 타격은 더 컸다. 그렇게 꼬인 문제는 20연패까지 이어졌다. 역대를 통틀어서도 가장 오랜 기간 이어진 연패에 수장인 이성희 감독의 머리 또한 복잡해졌다.

이성희 감독은 13일 흥국생명과의 경기 후 “14연패, 15연패가 이어질 때쯤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했다. 당시 이 감독은 자진 사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부진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성적에 대한 죄책감이 이 감독을 짓눌렀다. 이 감독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내가 여기서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 감독은 시즌 끝까지 팀을 지켰다. 생각을 바꾼 계기가 있었다. 문자 메시지였다. 이제 팀 내 최고참급 선수가 된 리베로 임명옥과 세터 한수지가 발신자였다. 그들이 보낸 장문의 문자 메시지에는 “힘을 내자.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 하자”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들 힘든 데 여기서 그만두는 것은 나만 힘들다고 회피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이 감독의 머리를 때렸다. 다시 힘을 냈다.
비록 최하위에 처졌지만 인삼공사는 시즌 마지막까지 끈질긴 모습을 선보였다. 흥국생명과의 최종전에서도 짜릿한 역전극을 거뒀다. ‘마지막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과였다. 이 감독도 이에 만족해했다. 이 감독은 “국내 선수들의 실력이 많이 향상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고 올 시즌 성과를 되돌아본 뒤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근성 있는 경기를 해줬다”고 고마워했다.
이 감독은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선수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다. 이 감독은 “다 힘들었는데 오히려 내가 선수들에게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다음 시즌 재도약을 다짐했다. 시쳇말로 깨지면서 배운 것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각오다. 국내 선수들이 경험을 쌓으며 많이 성장한 만큼 막연한 목표도 아니다.
이 감독은 “올 시즌은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반성한 뒤 “외국인 선수를 좀 더 면밀하게 확인해 준비하겠다. 기회가 있다면 FA 영입도 생각을 하겠다”고 구상을 드러냈다. 지는 과정에서 오히려 끈끈하게 뭉친 인삼공사다. 밤이 지나가면 다시 해가 뜨듯, 이 감독과 인삼공사가 올 시즌의 어둠을 교훈 삼아 다시 웃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