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형제 다 버리고 누나 너만 살겠다고 한 거 잘한 짓이야. 우리집에 남아서 형제들하고 살려고 허둥댔다간 너도 나처럼 됐을 거야”
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겨울, 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에서 무철(김태우 분)은 누나 선(정경순 분)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형편에 동생들을 외면하고 의사가 된 누나를 향해 건넨 진심의 말이다. 이 같은 선택에 대해 그간 이기적이라며 선을 경멸했던 무철의 내면에는 어쩌면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과 거기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숨어있던 것이다. 자신은 살인청부업자가 됐지만, 누나마저 이 같은 삶을 살기는 원치 않았던 동생의 애틋한 진심이었다.
‘그겨울’은 정통멜로 장르를 표방하지만, 인물들 간의 갈등과 애증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휴머니즘의 시각이 극의 바탕에 흐르고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대목은 ‘그겨울’이 남녀간의 사랑에만 치중하지 않고 사람사이의 관계나 삶의 조건이나 목적 등, 인간이 일평생을 살며 고민하는 것들을 풍부히 담아내며 '그겨울'을 단순한 멜로극으로 장르화할 수 없게 한다. 인간에 대해 남다른 이해와 연민의 시선을 견지해 온 노희경 작가의 필력은 이번 ‘그겨울’에서도 역시나 빛을 발한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적대적 관계임에도 서로를 염려하며 충고하는 모습을 다수 보인다. 오수(조인성 분)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살인청부업자 무철에게 첫사랑 희주(경수진 분)에게서 받은 트라우마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라고 조언하고, 무철은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진성(김범 분)에게 방황을 그만 멈추고 아버지와 함께 시골집으로 돌아갈 것을 충고하는 식이다. 무철이 누나 선에게 의사의 삶을 선택한 것은 잘 한 일이라고 넌지시 말하는 것 역시 일맥상통한다.
멜로에 있어서도 휴머니즘이 바탕이다. 오수는 오영(송혜교 분)이 시각장애를 앓고 가족 없이 홀로 살아오며 절망을 움켜쥔 모습에 삶에 대해 의지를 가지라고 목소리 높이고, 그러한 말은 영이 수술을 결심하는 결정적 이유이자 수에 대한 사랑이 시작되는 발화점이 됐다. 수가 영을 향해 애틋한 감정을 품게 된 것도 누구에게도 받지 못했던 손가락질 받는 삶에 대해 난생 처음으로 인정 받아본 영의 위로가 시발점이 됐다. 사랑은 삶에 의욕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기는 것이고, 살아있으면서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사는 삶에 대해 노희경 작가는 오수의 말을 빌려 "싸가지 없다"고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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