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 허용을 포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도루 허용은 70% 정도 투수에서 비롯된다. 주자에게 미리 폼을 알려주고 퀵모션이 느린데 어떻게 포수가 도루를 잡겠나".
시범경기 개막 전 미국 애리조나에서 1차 전지훈련을 준비하던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의 말이다. 현역 시절 화려한 커리어는 만들지 못했으나 코칭스태프와 프런트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염 감독은 팀 내 준족들의 과감한 베이스러닝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타 팀의 도루 허용에 대해서도 자신의 지론을 밝혔다. 도루 허용을 모두 포수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투수는 1.30초, 포수는 2초, 주자는 3.3초 내에서 성공을 노려야 한다. 포수가 투수를 위해 도와주는데 투수가 자기 던지는 것만 생각하는 건 아니다. 투수도 포수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팀워크다”.

팬은 물론이고 미디어 또한 도루 저지율이 낮은 포수에 대해서는 ‘소녀 어깨’, ‘물 어깨’, ‘자동문’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쓴다. 그러나 염 감독의 발언은 도루 허용의 책임을 모두 포수에게 돌리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다.
실제로 투수의 슬라이드 스텝이 느릴 때 주자가 오히려 더 도루 타이밍을 잘 잡고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도루 좀 한다’라는 평을 받는 주자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누가 포수인가라는 것이 아니라 투수의 투구폼 허점을 제대로 훔치는 순간 ‘살았다’라는 판단을 한다고 답한다.
한 현역 포수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자 “사실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수가 정확도가 떨어지는 도루 저지 송구를 했을 때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슬라이드 스텝이 느린 투수와 호흡을 맞췄을 때 도루 허용까지 도매금으로 비난 받는 것은 억울한 면이 크다는 말이 이어졌다.
“사실 포수가 1군에서 뛸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는 2루 도루 저지 시 얼마나 공을 미트에서 빨리 빼고 간결한 동작으로 정확하게 송구할 수 있는 지 여부다. 그 부분이 기본적으로 부족하다면 1군에서 포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자체는 있을 수 없다. 송구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그 부분이 크게 작용하는 경우는 광속구가 아닌 이상 드물다. 포수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동작 전환과 송구 정확도다”.
뒤이어 그는 “투수의 슬라이드 스텝이 기준치 이내의 빠르기를 갖춰 주자의 움직임을 조금 더 봉쇄할 수 있다면 포수도 함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높은 도루 저지율로 강견의 포수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투수와 포수 배터리가 펼치는 활약은 상호 작용이 큰 만큼 슬라이드 스텝이 빠른 투수가 포수의 명예를 높여줄 수도 있고 반대로 느린 투수는 포수를 ‘자동문’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식 구기 종목이 아닌 이상 모든 단체 스포츠는 동료 간의 상호작용이 큰 몫을 차지한다. 프로농구계에서 재간둥이 포인트가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승현(삼성)의 패스를 오리온스 시절 테크니션인 마르커스 힉스가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더라면 김승현의 전성기도 그리 화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 배터리를 이루는 포수가 ‘소녀 어깨’라는 평을 받는다면 투수에게도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 현장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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