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송혜교에게 묻습니다, 왜 죽고 싶은지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3.22 07: 53

[유진모의 테마토크] 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이례적으로 국내 방영이 끝나기도 전에 싱가포르에서 방송이 시작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 선판매돼 방송을 앞두고 있어 조인성 송혜교 등은 국내 방송이 끝난 뒤 해외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이라니 대단하긴 대단한 드라마고 조인성과 송혜교는 스타 중의 스타인 모양이다.
 단순한 시청률의 수치만 따진다면 KBS2 '최고다 이순신'이 단연 최고지만 치열한 수목드라마 경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그 겨울'이 화제성 면에서는 압도적이다. 드라마의 내용을 떠나 주연배우 조인성과 송혜교의 매력이 한껏 부각돼 그림 자체가 화보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카피가 내세우는 게 '살고 싶은 남자 조인성과 죽고 싶은 여자 송혜교'다. 살고 싶어하는 의지야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는 당연한 현상인데 송혜교, 아니 극중 오영은 왜 죽고 싶어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오영은 재벌 그룹 회장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재산을 물려받은 부자다. 위태위태하긴 하지만 회사 PL그룹 회장직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받았기에 어딜 가나 극진한 대접을 받는 귀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려서 뇌종양으로 두 눈의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자다. 게다가 그녀는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며 엄마가 오빠 오수를 데리고 떠나간 탓에 애정결핍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혈혈단신인 그녀의 보호자는 죽은 아버지와 내연의 관계였던 왕 비서(배종옥)다. 왕 비서는 자신이 오영의 어머니와 다름 없이 강한 애정을 갖고 돌봐왔고 지금도 진정한 애정과 희생정신으로 뒤를 봐주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녀의 속내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면 그녀는 오영의 아버지가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을 때 이를 방치해 세상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오영은 왕 비서의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부를 떠나 그녀를 믿지 못하고 증오심을 갖고 있다. 설령 왕 비서의 자신을 향한 희생정신이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가정을 파탄내고 추억에 상처를 입힌 인물이 왕 비서기 때문에 용서할 수도 그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눈이 멀어 무기력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녀를 방치할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오빠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오수(조인성)는 오영의 오빠와 동명이인이다. 오빠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오수는 빚 78억 원을 갚기 위해 오빠로 위장하고 오영 앞에 나타난 것이다.
 오영은 자신 밖에 모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에 타인과의 타협이 어려운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10여년만에 나타난 오수를 가짜라고 의심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곁에 접근한 의도는 의심한다. 돈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오수를 오빠라 안 부르고 '너'라고 업신여기며 오수의 친절과 배려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수는 처음에는 돈 때문에 오영의 오빠로 신분을 위장하고 그 집안에 입성했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음모를 꾸며가는 가운데 어느덧 오영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그 연민이 애정으로 변해간다. 오영 역시도 오수의 그런 진실성을 깨닫고는 마음을 연다. 열 뿐만 아니라 분명 오빠인데 어느덧 그녀는 질투를 느끼는 등 이성으로서의 감정마저 품게 된다.
 초기 만남에서 오영은 오수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자신을 죽이면 당신의 목적인 돈을 수월하게 만질 수 있지 않냐고 도발한다. 지하철 역에서 그녀는 오수에게 들어오는 지하철을 향해 자신의 등을 떼밀라고 주문하는가 하면 오수의 승용차를 타고 달릴 때 자신은 안전띠를 안 할 테니 당신은 안전띠를 착용하고 요령있게 추돌사고를 내서 자신을 죽여달라고 제안한다.
 두 사람의 갈등 소재로 등장한 것은 오수에게 78억원의 빚독촉을 하는 깡패 조무철(김태우)이 오수에게 건넨 한 개의 알약이다. 이는 가축 안락사용 독약으로 무철은 이 약으로 오영을 죽이고 빨리 돈을 마련해 자신에게 갚으라는 의미로 오수에게 준 것이다. 만약 그렇게 못하면 오수에게 자살하라는 의미도 된다.
 오수는 오영에게 이 알약을 괴롭고 힘들 때 먹으면 아주 편안해지는 것이라고 하고 오영은 오수에게 그것을 자기에게 주면 안 되겠냐고 강한 집착을 보인다.
 이쯤 되면 한 가지 강한 의문이 든다. 왜 오영은 그렇게 죽고 싶어하는가?
 오영은 웬만한 사람은 감히 꿈도 못 꿀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다. 집안에는 왕 비서를 비롯해 많은 피고용인들이 하인처럼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도와주고 있다. 회사에 나가면 그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시대만 현대사회지 그녀는 자그마한 왕국의 여왕에 다름 아니다.
 물론 그녀에게 결정적인 콤플렉스가 존재한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앞을 못 보기 때문에 모든 생활이 불편하고 힘든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그녀는 다른 종류의 장애인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눈만 멀쩡하다면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를 마음껏 누리며 호사스런 생활을 하겠지만 시각장애라는 현실속에서 그런 것들은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왔다. 사랑하는 엄마와 오빠를 떠나 보낸 그녀는 부모의 이혼 전 엄마 오빠와 함께 쌓은 소중한 추억들을 상처로 간직한 채 눈물을 안으로 삼키면서 그렇게 정신적 성장을 스스로 억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죽고 싶은 이유가 될까? 현실의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은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핸디캡을 딛고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성립시켜 간다. 게다가 오영 만큼 부유한 시각장애인이 있을까? 내로라하는 재벌가에서 시각장애인이 있다거나 그런 사람이 자살했다는 뉴스는 보도된 바 없다.
 가정파괴의 트라우마가 삶의 희망을 앗아갈 정도의 절망을 안겨줬다면 OECD 회원국 중 이혼율 1위인 우리나라에서 결손가정의 자녀들은 전부 타락하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어야 한다.
 지나치게 현실적 사실적 잣대로 그녀를 평가하지 말고 드라마적으로 봤을 땐 어느 정도 오영의 아픔과 균열을 이해할 수도 있다. 10살도 채 안 된 나이에 엄마와 오빠가 집을 떠났고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시력을 잃은 오영은 당시 현실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나이에는 자신이 가진 부와 지위를 알 리 없다. 단지 사랑하던 엄마와 유일한 형제인 오빠가 무슨 이유에선지 곁을 떠나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고 그 뒤로는 오로지 외로움과 고독 밖에는 배운 게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픔만 켜켜이 쌓아갈 때 시력상실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장애가 자신에게 찾아왔다. 아무리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슬픔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눈 앞의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은 더 커졌을 것이고 아무 것도 못 할 것이라는 무기력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 성장을 지체시킨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는 생면부지의 남자 이명호(김영훈) 본부장과 결혼해야 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생전에 정해놓은 룰이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 학교에서 왕따와 무시를 경험하며 성인이 됐고 첫키스도 한 번 못해본 채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야욕에 찬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녀를 낭떠러지로 떼미는 것이었으리라.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송혜교, 아니 노희경 작가에게 묻고 싶다. 왜 오영은 그토록 죽고 싶어하는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극이 종반을 향해 치달으면서 오영이 살고 싶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오수가 준 알약의 정체를 알고 분노하는가 하면 오수의 제안대로 수술을 받기로 한다.
 과연 작가는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가? 살고 싶어하던 남자를 죽이고 죽고 싶어하던 여자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뜻대로 순리대로 풀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수의 시청자가 원하는대로 모두 살려서 행복하게 잘 살았더라는 식의 해피엔딩 동화로 끝맺을 것인가?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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