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진이 돌아왔다. MBC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은 더 이상 없지만, 방송활동을 쉬는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며 시련에 성숙해진 눈매가 있었다.
오상진은 지난 22일 SBS ‘땡큐’를 통해 방송 활동을 재개했다. 지난해 1월 MBC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며 노조원이었던 오상진의 방송 활동이 중단된 지 1년3개월 만의 방송 복귀인 셈이다.
거대조직 MBC를 떠나 에이전시 업무를 맡아줄 회사 하나를 끼고 방송가에 나온 오상진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건 멋쩍음이었다. 그는 이날 ‘땡큐’를 통한 방송 복귀 이유를 묻는 질문에 프리선언 이후 가장 먼저 불러준 곳이 ‘땡큐’임을 고백하며 다소 민망한 듯 웃는 모습으로 MBC가 아닌 타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드러낸 소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이날 오상진이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인생의 커다란 전환기를 맞은 현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과, 거기에서 비롯된 특유의 진솔함이었다. 그는 이날 여러 가지 이유로 8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로 인해 느낀 심적 고통을 언뜻언뜻 비추며 공백이 만든 맨얼굴을 드러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하루아침에 백수가 돼 동네 산책길에 마주친 바쁘게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통해 느낀 괴리감과,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변해버린 건강보험 고지서를 보며 느낀 퇴사에 대한 실감은 오상진의 현재 고민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 대목. 그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껍질을 잃은 “민달팽이가 된 것 같다”며 커다란 변화 앞에 작아진 스스로를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듯하고 정직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오상진의 매력은 이날 역시 묻어났다. 그는 “처음에 방송했던 걸 생각해 보면 정말 어설프고 만들어지지 않았던 사람인데 회사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지켜봐주시고 보호해주셨던 것 같다”는 감사의 말부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내가 했던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앞으로를 더욱 잘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은 큰 시련을 겪고 한층 성숙해진 오상진의 앞날을 기대케 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170여 일 동안 진행된 MBC 노동조합의 긴 파업은 해를 넘긴 현재에도 미묘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는 업무를 이어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회사를 나와 새로운 선택을 하며 각자의 길을 걷는다. 이제 오상진에겐 더 이상 MBC 간판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은 붙지 않고, 그 대신 냉혹한 방송 환경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어쩌면 MBC 파업 때보다 살얼음판 같은 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로 모른다. 오상진의 진짜 고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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