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시청자들을 감쪽 같이 속였다. 돈 낭비와 왕따 논란이라는 예상 가능한 비난을 감수했기에 짜릿한 반전을 이끌 수 있었다.
‘무한도전’은 지난 23일 방송에서 하와이 편 1탄을 방송했다. 1탄의 중심에는 노홍철이 있었다. 그는 지난 해 9월 방영된 ‘니가 가라 하와이 편’ 우승자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노홍철은 하와이 여행을 주도할 수 있는 ‘갑’이었고, 유재석·박명수·정준하·정형돈·길·하하는 그의 지시대로 따라야 하는 ‘을’이었다.
시청자들도 이 프로그램의 지난 7년여간 행적만 봐도, 달콤한 여행기는 기대하지 않았을 터다. 워낙 험한 도전과 돌발상황이 펼쳐지는 곳이지 않나. 하지만 1탄의 시작은 시청자들의 예상보다 더욱 독하게 흘러갔다.

길은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늦게 꾸렸다는 이유로 공항에서 탈락했다. 와이키키 해변을 밟지도 못한 채 정형돈도 미국 L.A를 거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이어진 주사위 게임을 통해 하하, 유재석, 정준하가 차례대로 탈락했고 독하디 독한 박명수만 남았다.
하지만 이는 모두 제작진과 노홍철의 계략이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박명수는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 대신 일찍 탈락한 멤버들은 한국이 아닌 하와이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야말로 대 반전이었다. 이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몸고생을 한 박명수는 물론이고 팔짱을 끼고 방송을 불편하게 지켜봤던 일부 시청자들의 뒤통수도 가격한 장면이었다.
이날 ‘무한도전’은 방송 중간에 시청자 게시판과 트위터 등 SNS에 불만글이 쏟아졌다. 흥미가 떨어져도 확고한 고정 시청자들의 응원으로 버텼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날 방송만큼은 조금 위험했다. 고정 시청자들마저도 극단적으로 펼쳐진 서바이벌 게임에 대한 불만을 표했다.
일단 제 아무리 재미를 위한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방송이 장난이냐는 반응이었다. 하와이까지 비싼 비행기를 타고 가서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 자체가 돈 낭비라는 이유다.
더욱이 첫 번째 탈락자가 길이 된 것도 문제가 됐다. 길은 ‘무한도전’에 새 멤버로 합류한지 3년여가 됐다. 여전히 ‘박힌 돌’과 어울리지 못하는 ‘굴러온 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는 전문 방송인이 아닌 까닭에 초반 큰 웃음을 주지 못했다. 일부 시청자들이 그에게 억지스럽게 하차를 요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길은 이후 부족한 예능감을 오히려 부적응 캐릭터로 승화해 웃음을 안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적응 캐릭터가 하와이 편 1탄에서 악수로 작용할 뻔 했다. 방송에서 그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 되자 동정표가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길의 탈락과정은 돌발 중에 돌발 상황이었고,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여기에 정형돈까지 탈락하면서 ‘무한도전’ 내 과거와 현재 부적응 캐릭터가 모두 이탈하는 우연 아닌 우연이 발생했다. 왕따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 뒤에 펼쳐질 반전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시청자들이 불편하게 시청한 것도 당연했다.
때문에 이런 논란 속에 후반부에 펼쳐진 반전은 안방극장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반전이라는 제작진의 숨은 의도가 없었다면 돈낭비와 왕따 논란이 불거지고도 남았기에 재미는 더했다. 반전이 공개된 후 역시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180도로 뒤바뀌었다. 뒤통수를 맞은 게 다행이었고, 제작진이 깔아놓은 밑밥 덕에 재미를 느꼈다는 반응이다. 결국 예상 가능한 논란을 교묘하게 활용한 제작진의 뛰어난 전략이 프로그램의 흥미를 대폭 상승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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