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국내 극장가에서 외화의 열기를 보여주고 있는 영화 '웜바디스'(조나단 레빈 감독, 14일 개봉)는 확실히 좀비 마니아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정확히 말하면 좀비를 '이용'한 로맨스물이다.
그렇다면 좀비라는 캐릭터는 이 로맨스물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영화 속 니콜라스 홀트가 분한 좀비는 사회의 '루저'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등 좀 펴고 다녀야 무시 안당할 텐데"라고 말하는, 후드티 입은 좀비 소년 R은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젊은이다. 그의 생전 모습이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귀에 이어폰을 꼽은 채 흐물흐물 걸어다니는 반항아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텍스트에서 좀비를 루저로 해석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영화 속 좀비 R는 하지만 주류 집안의 아름다운 딸과 사랑에 빠진다. 그가 첫 눈에 반하는 쥴리(테레사 팔머)는 좀비를 모조히 잡아죽이고자 하는 장군의 딸이다. 루저가 최고권력자 딸을 사랑한다, 여기서부터 서사가 시작된다.

이름에서부터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쥴리엣'을 대놓고 오마주하는 이 영화에서 R은 다소 우유부단했던 로미오와는 다르게 쥴리에게 시종일관 적극적으로 대시하며 그녀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R은 자신이 좀비라는 사실은 별로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이 행동하다. 만약 R이 좀비가 아니라 현실 속의 누군가였다고 해도 이런 저돌적인 남자였을까?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R은 사회적으로 루저일 지는 모르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위할 줄 아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다.
'웜 바디스'의 이야기는 심플하다. 바이러스가 휩쓴 절망적인 세상에서 단 하나의 치료제는 사랑이다. 사랑은 어떤 고약한 병도 물리치고, 심지어 죽은 자들의 심장도 뛰게 만든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사랑에 대한 찬사를 좀비를 이용해 재기발랄하게 담아낸 모습이 사랑스럽다.
스멀스멀 봄 기운이 퍼져나오는 요즘, 영화를 본 일부 관객들은 이런 투정도 한다. '아 좀비도 연애를 하는데 난 왜?!'. 좀비 영화를 보고 싶어 극장에 갔는데 커플들에 둘러싸여 비참했다는 웃지 못할 반응도 있다. 어땠든 '웜 바디스'는 사랑, 더 나아가 이 세상의 모든 루저들을 위한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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